2010년 영화 ‘악마를 보았다’로 강렬하게 데뷔해 어느덧 데뷔 16년 차에 접어든 배우 김윤서.
대중에게 그는 드라마 ‘전설의 마녀’의 마주희, ‘여자의 비밀’의 채서린 등 서늘하고 도회적인 악역의 얼굴로 짙게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최근 긴 생머리를 단발로 싹둑 자르고 나타난 그의 얼굴엔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미소가 번져 있었다.
주어진 대본 속 화려한 캐릭터가 아닌, 투박하더라도 ‘인간 김윤서’의 진짜 삶을 찾아 나선 그가 유튜브 채널 ‘윤서의 소망’ 론칭(7월22일 채널 오픈 예정)을 앞두고 인생 2막의 포문을 열었다.
자연 속으로 들어간 도시 여배우, “직접 내 삶을 만들고 싶다”
“평생 도시에서 배우 생활을 하면서 늘 자연을 꿈꿔왔어요. 바쁜 일정 속에서도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소망이 늘 있었죠.”
김윤서가 새롭게 선보이는 유튜브 채널 ‘윤서의 소망’은 평생 도시 생활만 해왔던 그가 양평의 전원주택에 정착하며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실현해 나가는 과정을 리얼하게 담을 예정이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여배우가 왜 갑자기 투박한 전원생활을 택했을까.
“요즘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보다 진짜 나다운 삶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 같아요. 누군가 만들어준 역할보다, 이제는 제가 직접 만드는 삶을 살고 싶었죠”라고 그는 담담히 고백했다. 완벽하게 세팅된 반사판 아래의 여배우가 아닌, 화장기 없는 얼굴로 흙을 만지고 망치질을 하는 그의 모습은 낯설지만 강렬한 반전을 예고한다.
‘공학도’의 귀환… “내 손으로 깎은 수저에, 직접 구운 밥그릇을 올리다”
‘윤서의 소망’ 채널의 핵심 콘텐츠 중 하나는 단연 ‘자급자족’과 ‘DIY 건축’이다. 사실 김윤서는 단국대학교 건축공학과 출신이라는 독특한 전공 이력을 가지고 있다. 과거 수학과 화학, 콘크리트 배합과 하중 계산에 흥미를 잃어 연기의 길로 전향했던 공학도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양평의 전원생활에서 닭장을 설계하고 톱질을 하며 과거의 전공을 재발견할 준비를 마쳤다.
“어릴 적 그저 막연하게 집을 짓고 싶다는 생각에 공대에 갔었어요. 시공과 재료역학을 배우는 게 적성에 안 맞아 도망치듯 연기를 시작했지만, 지금은 그 경험을 살려 직접 닭장을 설계하고 고양이 집도 만들 계획이에요.”
그의 손재주는 이미 일상 곳곳에 녹아 있었다. 과거 성수동 공방을 찾아가 직접 치수를 재고 도면을 그려 옷장 서랍장과 LP 턴테이블 장식장까지 만들었을 정도로 목공에 진심인 그다. 이번 유튜브를 통해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간 ‘식탁 위의 완벽한 자급자족’을 꿈꾸고 있다.
“한번 배우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라 도자기 공방도 6개월간 진심으로 다녔어요. 내 손으로 직접 나무를 깎아 도마와 숟가락, 젓가락을 만들고, 물레를 돌려 직접 구워낸 도자기 밥그릇과 머그컵을 완성하고 싶어요. 양평 텃밭에서 직접 기른 작물들을 내가 만든 식기들에 담아 소박한 밥상을 차려내는 것, 그것만큼 완벽한 힐링이 어디 있을까요?”
가죽재킷 입고 강변을 달리는 여배우… 20대의 꿈 ‘라이딩’
반전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우아한 도시녀의 얼굴 이면에 숨겨진 김윤서의 또 다른 로망은 바로 모터사이클 ‘할리데이비슨’을 타는 것이다. 20대 시절부터 무작정 바이크가 타고 싶어 소형 면허까지 땄지만, 바쁜 연기 활동과 현실적인 여건 탓에 오랫동안 꿈을 미뤄둬야만 했다.
“많은 분들이 저를 정적이고 도회적인 이미지로만 기억하시는데, 저는 자유롭게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시간을 정말 좋아해요. 라이딩은 저에게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복잡한 머리를 비우고 온전히 나 자신을 만나는 해방의 시간입니다.”
당장은 소박한 미니 바이크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스텝을 밟아가겠지만, 가죽재킷을 입고 북한강변을 시원하게 내달려 시장에 장을 보러 가는 여배우의 모습은 그 자체로 시청자들에게 시원한 해방감을 선사할 예정이다.
40대를 맞이한 여배우의 딜레마, “실패해도 괜찮아, 과정일 뿐”
데뷔 후 ‘전설의 마녀’, ‘닥터 로이어’, 최근의 ‘페이스 미’, 영화 ‘남겨진’까지 쉴 틈 없이 달려오며 어느덧 40대에 접어든 김윤서. 유쾌한 인터뷰 중에도 그는 여배우로서 겪는 과도기적 딜레마와 현실적인 고민에 대해서만큼은 진지하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30대를 지나 40대가 되면서 배우로서 제가 맡을 수 있는 역할의 결이 나뉘기 시작했어요. 저는 아직 미혼이고 싱글인데, 극 중에서 누군가의 엄마나 아내 역할을 맡아야 할 때가 잦아졌죠. 실제 제 경험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감정을 표현해야 할 때 스스로 한계와 고충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경험하지 못한 현실과 연기 사이의 틈새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던 그는, 오히려 자연 속에서 답을 찾았다. 억지로 꾸며내기보다 삶과 연기 모두 흘러가는 대로 ‘유연하게’ 수용하기로 한 것이다.
“연기에도 인생에도 정답은 없다고 생각해요. 흐르는 물처럼 고이지 않고 흘려보낼 수 있도록 유연해지려 노력 중입니다. ‘윤서의 소망’에서는 실패도 하고, 실수도 하고, 좌절도 하지만 결국 다시 일어서서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소망은 완성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니까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닌, 하루하루 내 손으로 밥그릇을 빚고 땀 흘리며 충실하게 사는 것. 대본 속 차도녀의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톱밥을 털어내며 바이크 엔진음을 즐기는 ‘낭만 목수’이자 ‘라이더’로 돌아온 김윤서. 연기라는 본업을 넘어, 자신의 손으로 직접 짓고, 차리고, 거침없이 달리는 그의 가장 눈부신 ‘인생 2막’이 이제 막 스로틀을 당겼다.
[MK스포츠 홍동희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