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종(34·광주 FC)도 환한 미소를 감추기 어려웠다. 드라마 같은 승리였던 까닭이다.
광주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 16강전에서 비셀 고베(일본)를 1, 2차전 합계 3-2로 따돌리고 8강에 올랐다.
‘드라마 같은 승리’라고 표현한 이유가 있다. 광주는 3월 5일 ACLE 16강 1차전 고베 원정에서 0-2로 졌다. 광주는 2024-25시즌 ACLE 리그 스테이지 고베 원정에서도 0-2로 졌다. 광주는 고베와의 두 차례 맞대결에서 유효 슈팅 하나 기록하지 못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랬던 광주가 가장 중요한 경기에선 고베를 압도하며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
주세종은 12일 홈에서 펼쳐진 ACLE 16강 2차전에서 후반 32분 교체로 그라운드를 밟아 팀의 대역전승에 이바지했다.
주세종이 12일 고베전을 마치고 공동취재구역에서 취재진과 나눴던 이야기다.
Q. 기적을 썼다.
FC 서울 시절 이후 처음 ACL(ACLE의 전신) 8강 무대를 밟는다. 그게 벌써 몇 년 전인가. 2016년 이후 처음이다. 기분이 아주 좋다. 이정효 감독님, 코치 선생님들, 동료들 등 광주 모든 구성원이 힘을 합쳐서 일군 성과다. 우리가 함께 일군 성과여서 아주 기쁘다.
Q.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준비 과정은 어땠나.
이날 경기 전까지 고베와의 두 차례 맞대결에서 모두 패한 상태였다. 이정효 감독께서 경기 전 선수들에게 “이번엔 꼭 이겼으면 좋겠다. 우리의 8강 진출 여부를 떠나서 반드시 복수해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고베전에 모든 걸 쏟아내자”고 했다. 솔직히 분위기가 좀 무거웠다(웃음).
더 철저히 준비했다. 훈련은 아주 디테일하게 했다. 그런 준비가 고베전 승리로 이어지지 않았나 싶다. 선수들이 고베전 승리로 한 단계 더 성장할 것 같다.
Q. 주세종은 경험이 풍부하지 않나. 이정효 감독이 따로 주문한 게 있을까.
늘 같다. 내가 광주에 처음 왔을 때 이정효 감독께서 해주신 말이 있다. 이정효 감독께서 내게 “선임으로서 선수단을 이끌어줬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광주에 와 보니 이 팀만의 문화가 있더라. 내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선수들이 감독님과 코치 선생님들을 믿고 알아서 척척 한다. 나는 선수들에게 세밀한 부분에 관해서만 이야기해 주고 있다.
Q. 후반 32분 교체로 그라운드를 밟았다. 경기 투입 전까지 벤치에서 지켜보지 않았나. 선수들 움직임을 보면서 ‘오늘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나.
이정효 감독님, 우리 분석관들이 고베를 철저히 분석했다. 그 분석을 기반으로 디테일한 훈련을 진행했다. 우리가 준비한 게 초반부터 하나둘 나왔다. 그걸 보고 ‘오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이후엔 선수들의 얼굴을 봤다. 선수들이 힘겨운 경기 속 즐기는 게 보였다. ‘일내겠다’ 싶었다.
Q. 승부차기도 준비했을 것 같다.
준비하긴 했다(웃음). 사실 승부차기로 가려면 2골 차로 이겨야 했다. 승부차기보단 어떻게든 득점을 기록하는 데 중점을 뒀다.
Q. 만약 승부차기로 갔다면, 주세종이 키커로 나섰을 것 같은데.
내가 선임이니 당연하다고 본다. 경기가 승부차기로 갔다면, 내가 먼저 나서서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해야 후배들이 자신감을 더할 것이라고 봤다. 그런데 (승부차기로) 안 갈 것 같았다. 특히 연장전으로 접어들면서 고베 선수들의 발이 무거워지는 게 눈에 띄었다. 지친 게 확연히 보였다. 그걸 확인하고선 ‘연장전에서 끝낼 수도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연장전 시작 전에 선수끼리 더 단단하게 뭉치는 이야기도 했었다.
Q. 경기가 승부차기로 갔다면, 주세종이 마지막 키커로 나섰을까.
이정효 감독께 “내가 1번으로 차겠다”고 했을 거다(웃음). 큰 경기다. 선수들이 우물쭈물했다면, 내가 먼저 나서지 않았을까 싶다. 선배로서 그렇게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다.
Q. 주세종은 ‘기적의 사나이’ 아닌가. 고베전을 보면서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3차전 독일과의 맞대결(한국의 2-0 승리)을 떠올린 팬이 많았을 것 같다.
사실 경기 전 그 얘기를 할까 말까 했다.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결과적으론 안 했다. 그건 월드컵이었다. 당시 독일은 우승 후보 1순위였다. 엄청 막강한 팀이었다. 객관적으로 한국과 독일의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차부터 컸다. 광주와 고베는 다르다. 전력 차가 당시 한국과 독일만큼 크지 않다. 우리가 조금만 더 집중한다면, 충분히 잡을 수 있는 팀이라고 봤다.
고심 끝 그때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 이유다. 우리 선수들이 이런 경기를 승리로 장식한다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아주 큰 경험을 얻는다고도 생각했다. 우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또 다른 도전에 나선다. 더 큰 경험을 얻는 거다. 우리가 쓰는 드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모두가 감독님을 필두로 똘똘 뭉쳐 있다. 계속 나아가겠다.
Q. 8강전부턴 막대한 자금력으로 ‘슈퍼스타’를 끌어모은 중동 팀과 대결할 수도 있다.
8강전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다들 그럴 거다. 고베와의 16강 2차전만 생각하면서 준비했다. 우리가 제일 많이 한 말이 ‘이번엔 꼭 고베에 복수하자’였다. 경기 후 놀란 게 하나 있다. 고베전 승리로 충분히 들뜰 수 있다. 선수들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선수들이 팬들과 8강 진출의 기쁨을 나눈 뒤 라커룸으로 들어와서 주말에 있을 김천상무전(16일·원정) 이야기를 하더라.
그 얘기를 듣는 데 ‘아, 이 친구들의 목표는 여기가 끝이 아니구나. 더 높은 곳을 바라보는구나’란 걸 느꼈다.
Q. 이정효 감독은 고베전을 마치고 선수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줬나.
감독님도 팬들과 승리의 기쁨을 나눌 땐 분명 상기되어 있었다. 엄청나게 좋아하시는 게 느껴졌다. 그런데 라커룸으로 들어오시자마자 침착하셨다. 감독님이 선수들에게 “이런 게 축구다. 우리가 그동안 너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더 자신감을 갖고 하자. 우린 오늘처럼 할 수 있다”고 해주셨다.
Q. 많은 팬이 주세종에게 궁금해하는 것이 있다. 대전하나시티즌 시절부터 장발 아니었나. 광주 생활 초반에도 긴 머리였다. 최근 긴 머리를 짧게 잘랐다. 이유가 있나.
이정효 감독께서 내 머리를 보시곤 “안 어울려”라고 하셨다(웃음). 감독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당연히 잘라야 하는 것 아닌가. 농담이다. 나도 머리가 지저분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머리를 자르고 내려올 틈이 없었다. 세종시에서 가족과 지내던 중 이정효 감독님 전화를 받고 바로 내려왔다. 빠르게 팀 훈련에 합류해 경기를 준비했다. 고베 원정도 다녀왔다. 그러던 중 휴식일이 생겨서 머릴 잘랐다.
Q. 서울 시절 ACL 준결승까지 가봤다. 올 시즌 ACLE 8강에 오르지 않았나. 개인적인 욕심은 없나.
많은 팬이 기대하시다시피 세계적인 선수들을 만날 수도 있다. 아직 대진이 안 나왔지만, 누굴 만나든 ACLE 8강이란 무대는 선수들에게 큰 경험일 거다. 광주란 팀을 아시아에 알릴 수 있는 또 한 번의 기회이기도 하다. 어떤 팀을 만나든 평소처럼 준비해서 우리 축구를 펼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렇게 계속 나아가고자 한다.
[광주=이근승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