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슬램덩크」에는 “화려한 도미보다 가자미처럼 진흙투성이가 돼라”는 유명한 대사가 있다. 승리하기 위해선 모두 화려할 수 없다는 것, 누군가는 진흙투성이가 되어 코트를 누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날 한승희(24)는 이 대사의 주인공 채치수보다 더 가자미 같았다.
KGC는 6일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1-22 KGC인삼공사 정관장 프로농구 서울 SK와의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서 81-73으로 승리, 반격의 신호탄을 쐈다. 그 중심에는 전성현과 오마리 스펠맨 등 에이스들이 있었지만 묵묵히 제 역할을 해낸 한승희의 존재감도 컸다.
한승희는 이번 시즌 47경기에 출전, 평균 8분10초 동안 2.9점 1.5리바운드를 기록했다. 팀내에 워낙 뛰어난 기량을 가진 오세근이 있기에 출전 기회가 많지는 않았다. 챔피언결정전에서도 2경기 동안 평균 1분40초 출전한 것이 전부. 그러나 안양고-연세대 시절부터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가 강점이었던 그는 3차전에 앞서 김승기 감독의 선택을 받았다.
KGC 한승희(24)는 6일 SK와의 챔프전 3차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내며 81-73 승리를 이끌었다. 사진=KBL 제공
김 감독의 한승희 선발 기용은 도박과 같았다. 갓 신인 티를 벗은 한승희에게 챔피언결정전이란 큰 무대에서 선발 출전 기회를 준다는 건 모험이었다. 그러나 오세근의 무릎 상태가 좋지 않은 현시점에서 김 감독은 변칙 라인업을 낼 수밖에 없었고 한승희 역시 스타팅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경기 초반 2번의 공격 기회를 놓칠 때만 하더라도 김 감독의 선택은 틀린 듯했다. 완벽한 득점 기회였지만 슈팅이 모두 짧았다. 긴장한 탓이다. 하지만 김 감독이 한승희에게 공격을 기대하고 기용한 건 아니다. 그의 강점인 허슬 플레이와 리바운드, 그리고 몸싸움에 승부를 걸었고 그 선택은 결국 옳았다.
한승희의 활발한 움직임과 리바운드 참여, 여기에 적극적인 루즈볼 다툼은 KGC의 에너지가 됐다. KBL판 ‘배드 보이즈’ KGC의 막내답게 거친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고 SK 선수들을 튕겨냈다. 한승희가 코트 위에서 제 역할 이상을 해내자 오세근도 오랜만에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3쿼터까지 15분34초 출전한 한승희는 오세근의 출전 시간을 14분26초까지 줄여줬다.
한승희가 벌어준 시간은 큰 효과로 돌아왔다. 충분히 쉰 오세근은 지난 1, 2차전 부진을 딛고 3차전에 폭발했다. 불과 19분43초 출전했지만 3점슛 3개 포함 18점 6리바운드를 기록하며 SK 수비를 폭격했다.
한승희의 3차전 기록은 16분35초 출전 2점 2리바운드 1어시스트에 불과하지만 존재감만큼은 어떤 주전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았다. 지난 1, 2차전에서 SK 오재현이 알토란 활약을 했다면 3차전은 한승희였다.
김승기 감독 역시 경기 후 인터뷰에서 “한승희와 같이 연봉이 적은 어린 선수들이 제 몫을 해냈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다. 변칙 라인업으로 투입된 선수들이 초반에 잘 버텨줬기 때문에 흐름을 잡았다. 덕분에 승리했다”고 칭찬했다.
주전 체력 안배라는 확실한 숙제를 가지고 있는 KGC. 완벽히 해결한 건 아니지만 한승희와 같은 새 얼굴의 등장은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결국 KGC가 SK를 잡고 정상에 서려면 한승희가 오세근의 체력 안배를 확실히 해줘야 한다. 다가올 4차전에서도 한승희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