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세계선수권 은메달…의미 있는 성과 국내 언론 축제 분위기…윤 대통령도 축전 남자 높이뛰기 빼고 나머지 종목 거의 부진 여자 높이뛰기 등 3개 한국기록 32년째 그대로
의미 있는 성과였다. 하지만 한국육상의 갈 길은 아직 멀다. 지난 19일 제18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미국 유진) 남자 높이뛰기에서 은메달을 딴 ‘스마일 점퍼’ 우상혁(26‧국군체육부대)이 21일 개선했다. 그의 쾌거로 국내 매스컴은 연일 축제 분위기다. 윤석열 대통령도 축전을 보냈다. 그럴 만도 하다. 1945년 9월 대한육상연맹이 출범한 이래 도로경기(마라톤, 경보)가 아닌 필드경기에서 한국육상이 처음 거둔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육상은 스포츠 기초 종목이어서 의미가 컸다. 그러나 이번 대회 트랙과 필드, 로드(도로)의 47개 세부 종목(남23, 여 23, 혼성 1) 가운데 3개 종목만 참가할 수밖에 없었던 엷은 선수층, 그나마 남자마라톤은 기권했고 남자 경보는 30위권 밖으로 밀렸다. 한국육상은 30년 넘게 철옹성처럼 버티고 있는 낡은 한국신기록 경신 등 해결해야 할 난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이것이 한국육상의 실상이자 현주소다.
우상혁, 세계 최고수 바심의 경쟁상대로
우상혁이 2022 국제육상경기연맹 세계선수권 높이뛰기 시상식에서 은메달과 대회 마스코트 인형을 들어 보이며 미소 짓고 있다. 사진=AFPBBNews=News1
내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제19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와 2024 파리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정조준하고 있는 우상혁. 그의 이번 세계선수권 은메달 획득은 ‘단신’과 짝발 등 신체적 핸디캡을 딛고 이룩한 결과여서 더욱 빛났다. 높이뛰기 선수는 장신에 하체가 길어야 하며 체중은 가벼울수록 유리하다. 그러나 우상혁의 키는 1m 88로 높이뛰기 선수치고는 작은 편. 우상혁은 강도 높은 훈련으로 이를 극복했고 75kg이었던 체중도 식이요법으로 10kg을 줄였다. 우상혁은 초등학교 입학 전 교통사고를 당해 오른발(270mm)이 왼발(275mm)보다 짧은 짝발의 불리함도 이겨냈다. ‘긍정 마인드 전도사’우상혁은 이번 대회에서 대회 첫 3연패를 이룬 무타즈 에사 바심(31‧카타르)에게 2cm 차로 우승을 내주었지만 앞으로 있을 차기 세계선수권대회나 올림픽에서는 해볼만 하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2020 도쿄올림픽 공동우승자인 바심은 2m 43의 역대 세계 2위 기록도 보유한 현역 최고수. 그러나 우상혁은 지난 5월14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다이아몬드 리그 개막전에서 2m 33을 넘어 2m 30을 뛴 바심을 꺾었다. 우상혁이 자신감을 느끼는 이유다. 우상혁은 바심보다 5살 젊다.
한국육상, 3년전만해도 아시아 최하위그룹
사실 한국육상은 3년 전 만 해도 아시아의 변방이었다. 한국은 2019년 4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제23회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에서 1973년 대회 출범 이후 처음으로 동메달 하나 건지지 못하고 빈털터리로 귀국해 국내 언론으로부터 혹평받았다. 43개 세부 종목 129개의 금, 은, 동메달 가운데 1개도 따지 못해 참가 45개국 가운데 최하위그룹의 멍에를 썼다. 2013년 인도대회에서 동메달 2개에 그쳤을 때보다 못한 성적이었다. 당시 우상혁도 2m19로 7위에 그쳤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2m29로 은메달을 땄던 우상혁이 맥을 추지 못한 것. 그 당시와 비교하면 한국육상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사상 처음 은메달을 따낸 것은 평가받을만하다.
1990년대 수립된 9개 한국기록 “언제 깨지나”
하지만 이번 대회 남자마라톤에서 케냐 귀화 마라토너 오주한(34‧청양군청)이 작년 도쿄올림픽에 이어 이번에도 레이스 도중 기권해 준비과정에 문제가 있었음이 드러났고, 남자 20km 경보에서는 최병광(31‧삼성전자)이 1시간 28분 56초로 34위에 머물러 한계를 보였다. 최병광은 2013년 모스크바(38위), 2015년 베이징(45위), 2017년 런던(31위), 2019년 도하(21위)에 이어 5회 연속 세계선수권대회에 나섰으나 자신의 최고 기록(1시간20분29초)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나마 남녀 100m를 비롯해 대한육상연맹이 관리하는 51개 세부 종목(남자 25, 여자 25, 혼성 1) 대부분은 세계기록과의 격차가 너무 커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 참가 자격을 얻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특히 여자 높이뛰기(김희선‧1m93), 남자 400m 허들(황홍철‧49초80), 남자 3000m 장애물(진수선‧8분42초86)은 1990년 6월9일 서울에서 열린 제44회 전국육상선수권대회에서 수립된 낡은 한국기록으로 32년 넘게 그대로 남아있다. 이 밖에도 이봉주의 하프마라톤(1시간01분04초) 등 6개의 한국기록이 1990년대에 수립됐으나 아직도 깨지지 않아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세계적 브랜드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스폰서인 삼성이 1997년 1월 기초 종목 육성 차원에서 대한육상연맹을 맡아 26년째 거액을 투자하고 있으나 세계 정상과의 격차는 아직도 멀기만 해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우상혁의 쾌거를 계기로 한국육상이 세계무대에서 거듭날 수 있을까?
이종세(용인대 객원교수‧전 동아일보 체육부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