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정대영’ 43살 레전드의 마음을 흔든 딸의 한마디 “엄마가 집에 있었으면 좋겠다” [MK인터뷰]

“시원섭섭합니다. 이제는 가족들과 함께 하려 합니다.”

한국 여자배구 레전드 미들블로커 정대영은 지난 3일 화려했던 배구 선수로의 긴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정대영은 1999년 양백여상을 졸업하고 당시 실업팀이었던 현대건설에서 성인 배구 무대에 첫 발을 내디뎠다. 프로 출범 이후 2007년 GS칼텍스로 이적한 정대영은 팀의 간판선수로 맹활약하며 2007-08시즌과 2013-14시즌 2번의 우승을 이끌었다.

사진=KOVO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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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한국도로공사로 이적한 정대영은 화려하진 않지만 기복 없이 꾸준한 활약으로 2017-18시즌과 2022-23시즌 두 번의 우승에 일조했다. 2023~2024시즌을 앞두고 다시 GS칼텍스로 복귀한 정대영은 코트 안팎에서 젊은 선수들의 롤모델 역할을 하며 맏언니로서의 책임감을 보여줬다.

정대영은 2005 V-리그 출범 시즌 득점상, 블로킹상, 수비상 그리고 MVP에 오른 선수다. 2005-06시즌에는 백어택상, 올스타 MVP 그리고 2007-08시즌에는 GS칼텍스의 V1과 함께 챔프전 MVP에 자리했다. 2018-19시즌에는 베스트 미들블로커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꾸준했다. 큰 부상 없이 코트를 지켰다. 2008-09시즌 이후 출산을 위해 잠시 코트를 떠났다가 2010년에 다시 돌아왔다. 그 정도로 몸 관리도 잘했고 배구에 진심이었다. 그랬던 정대영이 523경기 5653점 1228블로킹의 기록을 남기고 코트를 떠난다.

5일 MK스포츠와 전화 통화를 가진 정대영은 “솔직히 은퇴하기 전까지는 시원섭섭한 기분이 많이 들었다. ‘그만둘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한 번 결정을 하니 마음이 후련했다. ‘이제 배구를 내려놔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제는 은퇴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운을 뗐다.

사진=KOVO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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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30대 후반 들어서 매년 생각을 했다. 나에게는 지난 시즌이 고비였던 것 같다. 페퍼저축은행 합류와 함께 처음으로 36경기를 뛰었는데, 현실에 많이 부딪혔다. 체력적으로 한계도 느꼈다. 이제는 배구를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때부터 마음의 준비를 조금씩 했던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몇 년 전부터 정대영의 은퇴를 기다리고 있었던 가족들도, 정대영에게 “고생했어. 축하해”라고 말하며 따뜻하게 안아줬다고.

그는 “가족들은 작년에도 은퇴를 하길 바랐다. ‘이제 나이도 40을 넘었으니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라고 하더라. 내 욕심에 계속 배구를 했던 것 같다. 이번에 그만둔다고 했더니 ‘그래. 이제 오래 떨어져 살고 했으니 셋이서 재밌게 살아봐’라고 이야기를 계속해 주더라”라고 웃었다.

사실 몸 상태도 몸 상태지만, 엘리트 배구선수의 길을 걷고 있는 딸 보민 양에게 미안함이 컸다. 엄마의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대다. 선수 생활하느라 챙겨주지 못했던 딸에 대한 미안함이 은퇴를 하는 데 계기가 되었다.

사진=KOVO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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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영은 “작년에 FA 계약할 때만 하더라도 배구를 더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최근 사춘기가 온 것 같다(웃음). 은퇴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는데, 작년 가을이었다. 보민이가 ‘다른 친구들은 집에 가면 엄마가 있는데, 나도 엄마가 집에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하더라.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지금 보민이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이 나인데’라는 생각이 컸다. 당분간은 집에 있으면서 보민이 친구들과 배구도 하고, 알려주기도 하면서 지내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운동선수 정대영이 아닌 주부 정대영의 삶이 어떤지 묻자 그는 “지금 이 시간적인 여유가 너무나도 좋다. 선수할 때는 스케줄에 맞게끔 움직여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시간의 자유로움이 있다. 또 복귀를 해야 된다는 생각이 없으니 편안하다. 아직 음식 같은 건 잘하지 못한다. 시댁이 이 근처라 저녁은 거기서 해결하고 있다”라고 미소 지었다.

그러면서 “당분간 지도자의 길은 걷고 싶지 않다. 그러면 가족들과 떨어져야 한다. 또 딸이 배구를 하고 있어 만약 프로에 가게 된다면 5년밖에 같이 살지 못한다. 지금으로서는 가족과 떨어지고 싶은 마음이 없다”라며 “그러나 해설위원이나 유소년 지도자는 가족들과 함께 하며 할 수 있기 때문에 제의가 들어온다면 고민을 해볼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정대영 배구인생에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사진=김영구 기자
정대영 배구인생에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사진=김영구 기자

정대영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언제인지 물었다. 정대영은 2012 런던올림픽 4강 그리고 2022-23시즌 흥국생명과 챔피언결정전에서 쓴 0%의 기적을 이야기했다.

그는 “지난 시즌 0%의 기적 순간에 내가 있었다는 게 아직도 감격스럽다. 런던 4강은 우리 선수들이 정말 똘똘 뭉쳐서 만든 결과다. 그때 이후로 배구 인기가 올라왔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후배 선수들이 열심히 해서 배구 인기가 더 올라왔으면 좋겠다”라고 희망했다.

현대건설, GS칼텍스, 한국도로공사를 거쳐 GS칼텍스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현대건설에서의 정대영도 빛났지만 GS칼텍스, 도로공사에서 노장의 투혼을 보여준 정대영의 모습도 아름다웠다.

정대영 역시 “마지막 시즌에 GS칼텍스에 와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GS칼텍스에서는 새로운 도전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어렸을 때는 결혼하면 은퇴를 하는 것이었는데, 이 팀에서는 결혼을 하고 출산휴가도 받았다. 나에게 너무 잘해줬고, 은퇴를 결심했을 때도 어떻게든 대우를 많이 해주려고 해준 팀이다”라고 말했다.

사진=KOVO 제공
사진=KOVO 제공

그러면서 “도로공사에서는 34살부터 43살까지 있었다. 특히 김종민 감독님이 노력을 많이 해줬다. 내 배구 인생에 있어 가장 큰 복은 김종민 감독님을 만난 것이다. 힘들어도 내색 한 번 하지 않으셨다. 내가 힘들 때 채찍질도 해주시고, 응원도 많이 해주셨다. 감독님이 선수들을 아우르는 그런 모습이 나에게도 큰 힘이 됐다. 덕분에 선수 생활을 오래 할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라고 미소 지었다.

끝으로 정대영은 “은퇴를 결정하고 많은 생각을 했다. 내 생각보다 훨씬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또 팬들의 사랑 덕분에 오래 했다고 생각한다. 가끔 경기장에 가서 ‘50살까지 해주세요’라는 플래카드를 보면 정말 힘이 났다”라며 “정말 팬분들 덕분에 배구를 재밌게 했고, 오래 할 수 있었다. 감사하다. 정말 많은 사랑을 주셔서 감사하고, 팬들의 기억 속에 오래오래 남았으면 좋겠다”라고 선수 정대영으로서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배구선수가 아닌 43살 초보주부의 삶을 살게 된 정대영, 많은 배구 팬들은 레전드 정대영을 잊지 않을 것이다. 정대영의 마지막 소속팀이 된 GS칼텍스는 2024-25시즌 중에 은퇴식을 열 예정이다.

이정원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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