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흥(69) 대한체육회장이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3연임 도전을 선언했다. 지난 19일 정몽규(62)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4연임 도전을 발표한 지 나흘만이다.
하지만 이 회장이나 정 회장의 연임 도전이 체육계의 구설에 오른 것과는 달리 지난 20일 정의선(54) 대한양궁협회 회장의 6연임 확정에는 모두가 환영하는 분위기다.
부패 혐의로 수사를 받고있는 이 회장이나 문체부 감사 결과 중징계 요구의 대상이 된 정 회장과는 달리 한국 양궁을 세계 최강으로 이끈 정의선 회장의 연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대한체육회 정관에는 체육단체 회장의 2연임은 가능하도록 돼있으나 그 이상 연임을 원할 경우 스포츠공정위의 승인을 받아야하는데 이들은 모두 관문을 통과하기는 했다.
하지만 기준이 애매한데다 일부 공정위원이 이해당사자로부터 골프접대를 받는 등 말썽을 일으켜 공정성에 논란이 일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을 이끄는 정의선 회장은 이번 제14대 대한양궁협회 회장 선거에 단독 후보로 등록한 후 선거운영위원회의 후보자 결격 사유 심사를 거쳐 최종 당선인으로 확정됐다.
2005년 5월 부친 정몽구(86) 회장에 이어 제9대 대한양궁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이래 20년째 한국 양궁의 발전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다는 평가다.
현대자동차그룹의 경영 노하우를 양궁에 접목해 한국 양궁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정 회장의 리더십 아래 한국 양궁은 2024 파리올림픽 양궁 여자부 10연패와 5개 전 종목 석권을 기록하며 세계 최고의 경기력을 과시했다.
훈련용 AI 슈팅 로봇, 화살 선별 슈팅 머신, 심박수 측정 장치, 선수 맞춤형 그립, 복사냉각 모자, 야외 훈련용 다중 카메라 등 다양한 신기술과 장비를 개발해 선수들이 실제 훈련과 경기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혁신적인 기술들은 한국 양궁이 국제 경기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 회장은 2005년 11월 제8대 아시아 양궁연맹 회장으로 부임한 이후 5연임 중에 있으며, 현대자동차그룹은 세계양궁연맹의 최대 후원사로 국제 양궁계에 꾸준히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반면 지난 10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직무 정지를 당한 이기흥 회장은 본인의 적극적인 해명에도 불구, 경찰과 검찰의 수사를 받는 등 사면초가의 상황.
이 회장은 직원 채용 비리 및 금품 수수 등 비위 혐의에 대한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공직복무점검단의 수사 의뢰로 서울경찰청 반부패수사대의 수사를 받고 있다.
또 진천선수촌 시설 관리업체 선정 과정의 입찰 비리 의혹과 관련해 이 회장의 핵심 측근 2명이 관여한 정황이 드러나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가 수사 중이다.
검찰은 진천선수촌을 압수수색한데 이어 피의자 8명은 물론 참고인 조사까지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회장이 직원 채용 비리와 입찰 비리에 직접적으로 연루된 것으로 드러날 경우 3선에 성공하더라도 업무방해 등 혐의로 형사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이와 함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임기 연장이 무산된 것도 이 회장에겐 타격이다. 내년 정년(70세)이 되는 이 회장이 임기 4년을 연장해 주는 예외 규정 적용을 기대했지만, 임기 연장 후보 명단에서 이름이 빠졌기 때문이다.
내년 1월 14일 치러질 제42대 대한체육회장 선거에는 이기흥 회장 외에 안상수(78) 전 인천시장, 강태선(75) 서울시 체육회장, 강신욱(69) 단국대 명예교수, 김용주(63) 전 강원도체육회 사무처장, 박창범(55) 전 대한우슈협회장, 유승민(42) 전 대한탁구협회장, 오주영(39) 전 대한세팍타크로협회장 등이 출마 의사를 밝혔다. 후보 등록은 24~25일 이틀간이다.
한편 국내 82개 경기단체(인정단체 포함) 가운데 최대 규모인 대한축구협회도 내년 1월 8일의 제55대 회장 선거에 정몽규 현 회장이 4연임에 도전, 축구계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지난해 승부조작에 가담했던 비리 축구인들의 기습 사면을 시작으로 아시안컵 부진, 파리올림픽 본선 진출 무산, 대표팀 감독 선임 논란, 천안 축구종합센터 관련 배임 의혹 등으로 퇴진 압력을 받았던 정 회장은 허정무(69) 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신문선(66) 명지대 교수 등과 대한축구협회 수장 자리를 놓고 물러설 수 없는 한판 대결을 벌여야 한다.
정 회장의 비판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지난해 3월 승부조작 축구인들을 기습적으로 사면하면서부터였다. 결국 그는 거대한 후폭풍과 마주치며 사면 결정을 취소해야 했다.
한국 축구를 뒤흔들고 존폐 위기로까지 몰고갔던 2011년 국내 프로축구(K리그) 승부조작 사건이 터졌을 당시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였던 정 회장. 그는 국민에게 사과했고 2013년 대한축구협회장 자리에 올라 지금까지 12년간 3연임을 하면서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하지만 공보다 과가 많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지난 1월 한국 축구는 손흥민을 필두로 이강인, 김민재 등 이른바 ‘황금세대’를 앞세워 1960년 대회 이후 64년 만에 아시아축구연맹(AFC) 주최 2023 카타르 아시안컵 우승에 도전했다.
그러나 정 회장이 독단적으로 기용한 위르겐 클린스만(60) 감독의 한국팀은 준결승에서 요르단에 유효 슈팅 1개도 날리지 못하고 0대2로 패퇴, 부정적 여론이 형성되자 축구협회는 클린스만 감독 경질로 급한 불을 껐다.
하지만 이어진 23세 이하 아시안컵 8강전에서도 황선홍(56) 감독의 한국 올림픽팀은 신태용(54) 감독의 인도네시아에 승부차기 끝에 무릎을 꿇어 1988년 이후 이어오던 ‘10회 연속 올림픽 진출’의 꿈이 산산조각났다.
아울러 여자축구대표팀도 월드컵 조별 예선에서 탈락하는 등 악재가 겹쳤다. 정 회장은 클린스만 감독 경질 이후 수개월을 끌었던 감독 선임 과정에서 울산 HD를 이끌고 K리그 선두를 달리던 홍명보(55) 감독을 선임하면서 스스로 ‘불난 집에 부채질’을 했다.
결국 홍 감독은 대표팀 사령탑 직을 수락했지만, 팬들의 비판과 선임 과정에 대해 논란이 계속되자 정치권까지 의문을 제기했고, 정몽규 회장과 홍명보 감독, 이임생 기술총괄이사 등이 국회에 불려 가 해명하느라 진땀을 흘리기도 했다.
이종세(대한언론인회 총괄부회장·전 동아일보 체육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