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드릴 수 있는 것은 다 보여드렸다.”
친정팀에 비수를 꽂은 심우준(한화 이글스)의 얼굴에는 후련함이 묻어나왔다.
2014년 2차 특별지명 전체 14번으로 KT위즈의 부름을 받은 심우준은 지난해까지 통산 1072경기에서 타율 0.254(2862타수 726안타) 31홈런 275타점 156도루를 올린 우투우타 내야 자원이다. 2023~2024년 상무를 통해 군 복무도 마쳤다.
이런 심우준은 지난해 말 4년 최대 50억 원(보장 42억 원 옵션 8억 원)의 조건에 한화와 손을 잡았다. 22일에는 특별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옛 홈 구장인 수원 KT위즈파크에서 펼쳐진 개막전에서 친정팀 KT와 재회한 것.
해당 경기를 앞두고 이강철 KT 감독은 “발 빠른 심우준이 출루한다면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다. 같이 있을 때는 몰랐는데 한 번 지켜봐야겠다”고 말했다. 이를 들은 심우준은 “직접 겪게 해드릴 것이다. 나가면 (포수) (장)성우 형을 많이 흔들 생각이다. (강)백호가 포수 하게 되면 무조건 잡는다 했다. 한 번 잡아보라 했다”며 “같이 있을 때 느끼지 못했던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좀 더 보여주고 싶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심우준은 자신의 말을 지켰다. 9번타자 겸 유격수로 한화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그는 공·수에서 존재감을 뽐내며 한화의 4-3 역전승을 이끌었다.
한화가 0-2로 뒤진 3회초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첫 타석에 들어선 심우준은 1루 관중석을 바라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어 중앙, 3루에 위치한 팬들에게도 고개를 숙인 그는 상대 선발투수 엔마누엘 데 헤이수스에게 볼넷을 얻었고, 곧바로 2루를 훔쳤다. 이후 김태연의 1타점 좌전 적시타가 나왔고, 심우준은 홈을 밟을 수 있었다.
5회초 삼진으로 물러난 심우준은 양 팀이 2-2로 팽팽히 맞선 7회초 2사 2루에서 매섭게 방망이를 휘둘렀다. 상대 우완 불펜 자원 김민수의 3구 141km 패스트볼을 공략, 우중간으로 향하는 1타점 적시 2루타를 작렬시켰다. 한화가 결국 동점을 허용하지 않고 승리함에 따라 심우준의 이 안타는 이날의 결승타가 됐다. 이후 9회초 마지막 타석에서는 3루수 땅볼로 물러나며 심우준의 이날 성적은 3타수 1안타 1타점 1볼넷 1도루로 남게됐다.
경기 후 심우준은 자신의 활약에 점수를 매겨달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만점이다. 중요한 상황에서 안타를 때린 게 컸다. 보여드릴 수 있는 것은 다 보여드렸다. 앞으로도 타석에서 욕심부리지 않고 오늘처럼 하루에 하나씩만 해주면 좋을 것 같다”고 밝은 미소를 지었다.
이날 심우준은 공격 뿐 아니라 수비에서도 빛났다. 수 차례 멋진 호수비를 선보이며 한화 투수들의 어깨를 가볍게 했다.
그럼에도 그는 “팬 분들이 잘했다고 인정해 주시면 잘한 것이겠지만, 개인적으로 수비는 깔끔하지 않았던 것 같다”며 “가면 갈수록 더 깔끔하게 할 테니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심우준이 첫 타석에서 팬들에게 인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전 동료 장성우와 심판진의 배려가 있었다. 심우준이 인사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박근영 주심은 마운드를 향해 걸어갔고, 장성우는 포수 장비를 매만졌다.
심우준은 “성우 형이 심판님에게 먼저 이야기한 것 같다. 내가 타석에 나가기 전부터 심판님이 먼저 앞으로 나가셨다”며 “성우 형한테 너무 고맙다. 괜히 안방마님이라 불리는 게 아니다”라고 고마움을 표했다.
이어 “수원에서 개막전을 해 좋았다. 오히려 빨리 하고 싶었다. 솔직히 내가 오랜 기간 쓴 구장이었기 때문에 부담은 없었고 편했다. 첫 타석에서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또 KT 팬 분들이 많이 환호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좋았다”며 “(한화로 와서) 응원가가 새롭게 바뀌었는데 팬 분들이 쉽게 따라할 수 있게 잘 만들어 주신 것 같다. 한화 팬 분들이 워낙 목소리가 크다 보니 응원을 듣고 더 힘이 났다”고 덧붙였다.
결승타를 친 순간에도 KT를 배려한 심우준이다. 그는 “대기 타석에서 (김)민수 형의 커터나 슬라이더가 좋아서 약간 오른쪽 방향으로 친다 생각했다. 내가 보기엔 실투가 들어온 것 같은데 그걸 놓치지 않은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며 “세리머니를 더 크게 하고 싶었지만, 상대가 KT다 보니 자제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8위에 머문 한화는 새 홈 구장인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와 함께하는 올해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심우준 역시 여기에 일조할 생각이다.
그는 “전체적으로 팀이 단단해지고 안정감이 생긴 것 같다. 또 우리 불펜진이 워낙 좋기 때문에, 선발 투수가 6이닝 정도만 버텨주면 팬들이 편하게 볼 수 있는 경기를 자주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수비를 잘해 최대한 투수들에게 부담을 안 주려 한다. 주자가 나갔을 때도 최대한 타자에게 집중하게끔 만들어주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목소리에 힘을 줬다.
[수원=이한주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