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를 갈망하는 시대다.
그런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축구 팬이 광주 FC 이정효 감독에게 위로받고, 용기를 얻는다.
이 감독 인생에 특혜는 없다. 오직 땀으로 일군 결과만 있을 뿐이다.
이 감독은 2011년 아주대학교 축구부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전남 드래곤즈, 광주, 성남 FC, 제주 유나이티드(제주 SK의 전신) 등에서 코치 생활을 했다.
10년 이상 준비한 끝 2022년 기회를 얻었다.
이 감독은 K리그2로 강등된 광주에서 감독 생활을 시작해 곧바로 승격을 일궜다. K리그1 승격 첫 시즌엔 구단 역대 최고 성적(3위)을 냈다. 2024시즌 긴 연패에 빠지며 ‘이젠 어렵다’는 비관적 전망이 나왔다. 이 감독은 안정적으로 잔류를 일궜다. 첫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에선 한국 팀 중 유일하게 승승장구(乘勝長驅)했다.
지난해 여름부터 엄지성, 이희균, 허 율, 정호연 등 핵심 선수 여럿이 빠져나갔다. 축구계는 2025시즌을 앞둔 광주를 향해 ‘올해는 진짜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이 감독은 늘 그래왔듯이 결과로 반박한다.
광주가 J1리그 3연패에 도전 중인 비셀 고베에 대역전승을 거두며 ACLE 8강에 올랐다.
한국 팀 중 유일하게 ACLE 리그 스테이지를 뚫어낸 광주는 8강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 명문 알 힐랄을 만난다. 알 힐랄은 사우디 프로페셔널 리그(19회)는 물론 ACLE에서도 최다우승(4회)을 기록 중인 팀이다.
이 감독은 “솔직히 알 나스르(사우디)를 만나고 싶었다”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붙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어 “알 힐랄도 좋다. 나는 우리의 8강 상대가 알 힐랄로 결정 났을 때 기뻤다”고 했다.
‘MK스포츠’가 이 감독과 나눈 이야기다.
Q. 먼저 조성권의 몸 상태를 물어봐야 할 듯합니다. 조성권이 3월 22일 포항 스틸러스전에서 모두가 깜짝 놀랄 정도의 큰 부상을 당했잖아요. 괜찮아졌습니까.
경기 다음 날 병문안을 다녀왔어요. 많은 분이 걱정해 주셨습니다. 이 자릴 통해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요. 많은 분이 걱정해 주신 덕분인지 최종 검사에서도 ‘이상 없음’이 나왔습니다. 지금은 훈련에도 참여하고 있어요. 조성권 선수가 “감독님, 대전하나시티즌 원정에 꼭 나가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상황을 보고 결정하려고 합니다. 조성권 선수가 크게 다치지 않아 ‘천만다행’이에요.
Q. 이정효 감독 말대로 ‘천만다행’입니다. “선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부상은 절대 나와선 안 된다”는 게 조성권의 부상 이후 축구계의 공통된 반응이었어요. 이 부분은 계속 이야기하면 길어질 듯해서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K리그는 주심의 판정에 관해 그 어떠한 언급조차 할 수 없는 규정이 존재하기도 하고요. 곤란해지실 수 있으니 그만하겠습니다. 사우디를 넘어 아시아 최고의 팀으로 꼽히는 알 힐랄을 상대합니다. ACLE 8강 상대가 알 힐랄로 결정 났을 때 어땠습니까.
저는 솔직히 알 나스르를 만나고 싶었어요. 호날두와 붙어보고 싶었습니다(웃음). 알 힐랄도 좋습니다. 우리 상대가 알 힐랄로 결정이 났을 때 기뻤어요. 알 힐랄 감독이 조르제 제수스란 분입니다. 포르투갈 출신 지도자로 벤피카, 스포르팅(이상 포르투갈), 플라멩구(브라질), 페네르바체(튀르키예) 등을 거쳤어요. 포르투갈, 브라질에선 올해의 감독상을 받기도 했죠.
제수스 감독은 2023년 7월부터 알 힐랄을 맡고 있습니다. 지난 시즌엔 사우디 프로페셔널 리그 무패우승(34경기 31승 3무·승점 96점)을 달성했어요. 알 힐랄은 선수 면면도 화려합니다. 야신 부누, 칼리두 쿨리발리, 후벵 네베스, 밀린 코비치-사비치, 알렉산다르 미트로비치 등이 뛰죠. 우리 선수들이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ACLE 8강입니다. 8강에 올라온 팀은 다 강팀이에요. 저는 알 힐랄을 만나 좋습니다.
Q. 광주는 ACLE 리그 스테이지 일정으로 한 해 시작이 빨랐습니다. 3월 A매치 휴식기 땐 포항전을 소화했어요. 쉴 시간 없이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알 힐랄 분석은 해봤습니까.
ACLE 16강 1, 2차전 하이라이트만 본 상태예요. 우리랑 붙을 때쯤 되면, 부상 선수가 하나둘 돌아온다고 알고 있습니다. 부상으로 한동안 빠졌던 미트로비치는 훈련 중인 것으로 알고요.
Q. 이정효 감독의 말처럼 ACLE 8강입니다. 약팀은 없습니다. 알 힐랄이 지난 시즌엔 리그 무패우승을 기록했지만, 올 시즌엔 리그 25경기에서 18승 3무 4패(승점 57점)를 기록 중입니다. 선두 알 이티하드를 추격 중인 리그 2위인데요. 지난 시즌엔 없던 약점이 생긴 겁니까.
알 힐랄이 지난 시즌처럼 독주를 하지 못하는 건 주축 선수들의 부상이 원인이라고 봅니다. 그 선수들이 우리와의 경기 땐 다 돌아오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저는 그러길 바랍니다. 재밌게 붙어봐야죠. 우리 선수들이 세계적인 선수들을 상대로도 잘해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Q. 이정효 감독은 선수 시절 ACL(ACLE의 전신) 준결승에 올랐던 경험이 있습니다. 선수 시절 ACL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까.
준결승에서 크게 졌죠. 알 이티하드를 만나 홈에서 0-5로 대패하고, 원정에서 0-2로 졌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건 알 이티하드에 좋은 선수가 정말 많았다는 거예요.
Q. 감독으로 ACLE를 치르는 건 올 시즌이 처음이잖아요. 선수 시절 ACL 경험이 지도자로 ACLE에 도전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습니까.
제가 지도자를 하면서 느끼는 게 있습니다. 선수 시절 경험이 지도자를 하는 데 도움이 되긴 합니다. 하지만, 선수로서의 경험과 지도자로서의 경험은 ‘완전히 다르다’는 걸 더 느낍니다.
Q. 완전히 다르다?
완전히 달라요. 선수 때 경험만 가지고선 선수들을 지도할 수 없습니다. 제가 선수 때 경험만 가지고서 지도자를 한다면, ‘선수들은 이렇게 얘기하면 이럴 거야’라고 짐작해서 가르쳐야 할 겁니다. 경험은 이야기 해줄 수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은 얘기하지 못할 거예요. 지도자, 선수의 경험은 완전히 다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Q. 선수 시절부터 코치 때까지 여러 감독과 함께 했잖아요. 선수, 감독은 ‘확실히 다르다’는 걸 느끼게 해준 지도자가 있었습니까.
제가 선수 생활할 때 감독님이 열세 번 바뀌었습니다. 저는 고(故) 이안 포터필드(스코틀랜드), 안드레 에글리(스위스) 두 감독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지난 시즌까지 울산 HD에 몸담았던 이케다 세이고 피지컬 코치, 장외룡 감독님에게 배우고, 느낀 것도 많습니다.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Q. 세이고 코치와의 인연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제가 부산 아이파크에서 주장 완장을 달고 뛸 때 피지컬 코치셨어요. 피지컬 코치란 게 생소하던 때였습니다. 세이고 코치님을 보면서 피지컬 분야에 큰 관심을 갖게 됐죠. 공부도 많이 했고요.
Q. 이정효 감독은 본래 감독이 아닌 피지컬 코치를 꿈꾸지 않았습니까.
그랬죠. 피지컬 분야를 열심히 공부해서 전문성을 갖고 싶었어요. 전문적인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피지컬 분야에선 한국 최고가 되고 싶었죠. 또 감독, 코치들은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 많이 받잖아요(웃음). 피지컬 공부를 꽤 열심히 했어요. 그때 공부했던 것들이 지금 감독 생활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피지컬 쪽에 많은 걸 맡기고,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없어요. 저는 선수들 몸 상태를 더 이해하고, 신경 쓸 수 있는 겁니다.
Q. ACLE 조별리그가 리그전으로 바뀌면서, 일본 J1리그 구단들의 강세가 눈에 띄었어요. 올 시즌 ACLE에 참가한 J1리그 세 팀 모두 16강에 올랐죠. 광주가 그 가운데 가장 강한 고베를 떨어뜨렸지만, 요코하마 마리노스, 가와사키 프론탈레는 8강에 오른 상태입니다. 일본 축구계는 체계적인 계획, 구체적인 방향성, 전문성을 갖춘 전문 인력 활용 등에 익숙하다고 합니다. J1리그를 대표하는 세 팀과 붙어봤습니다. 다 이기기도 했고요. J1리그는 무엇이 달랐습니까.
J1리그는 유럽을 보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느꼈어요. 세계 최고의 리그를 바라보고 나아가는구나. 환경 자체가 다르잖아요. J1리그 선수들은 축구에만 집중합니다. 잔디, 클럽하우스 이런 건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언제든지 운동만 할 수 있는 환경이니까. 선수들이 당연히 누려야 하는 걸 당연하게 누리고 있습니다.
일본 선수들을 보면서도 다르다는 걸 느꼈습니다. 일본 축구 인구만큼 무서운 게 많은 선수가 아시아를 넘어 유럽을 보더라고요. 더 놀랐던 건 단순히 ‘유럽을 따라잡겠다’는 게 아니었습니다. ‘언젠가 유럽을 뛰어넘겠다’는 게 느껴졌어요. 피지컬 쪽으로도 이야기를 나누면서 앞서 말씀드린 부분들을 많이 느꼈죠.
일본의 본래 강점은 탄탄한 기본기, 볼 다루는 능력 등이었잖아요. 일본은 유럽을 이기기 위해 무엇이 부족한지 철저히 분석했습니다. 피지컬이었어요. 그 노력의 결과들이 나오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솔직히 J1리그 팀들과 붙어봤을 때 전술적으로 밀린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어요. 단, 개개인의 기량 차, 피지컬 부분에선 ‘벽’을 느꼈습니다.
Q. 그 벽이 허물어지려면 여러 가지가 필요할 듯한데요.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게 ‘기본기’잖아요. 탄탄한 기본기를 갖추려면 유소년 시스템이 많이 바뀌어야 하지 않습니까.
꼭 바뀌어야죠. 제가 J1리그 팀들과 붙으면서 느낀 게 뭐냐 하면, 일본 선수들은 위험 부담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요. 더 쉽게 설명하면, 볼을 빼앗기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리스크를 안는 것에 익숙하고, 도전적으로 축구하는 게 당연하다는 겁니다. 실패하더라도 계속 시도하는 게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Q. 수많은 축구인이 성인 무대인 프로에서 유소년 시절의 습관을 바꾸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합니다. 축구계가 이정효 감독에게 놀라는 이유 중 하나는 프로에서 많은 선수를 성장시키고, 완전히 다른 선수로까지 만들어내고 있다는 겁니다.
저는 처음부터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인생을 살면서 알게 된 것들을 우리 선수들에게 조금씩 가르쳐줘야겠다. 우리 선수들은 못하는 게 아니고, 지금까지 몰랐던 것’이라고 말이죠. 모든 선수의 인생이 선수로만 채워지진 않습니다. 은퇴 후의 삶도 정말 중요해요. 저는 선수들에게 은퇴 후의 삶까지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지도자이자 선배가 되고 싶습니다. 인생 선배로서 길 안내 정도는 해줄 수 있잖습니까(웃음).
Q. 선수를 볼 때 가장 중점적으로 보는 게 있습니까.
장점만 봅니다. 성장 가능성이 있는 장점을 유심히 보려고 하죠. 단점은 생각하지 않아요. 장점 다음엔 인성을 봅니다. 태도, 인성이요. 인성이 안 좋은 선수들은 받아들이는 걸 못합니다. 제겐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일 줄 아는 ‘착한 선수’가 필요해요. 단, 운동장에서 마냥 ‘착한 선수’는 필요 없습니다.
Q. 앞서서 선수들이 ‘축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언급했습니다. 많은 축구인이 자기 일에만 집중하면 되는 일본을 부러워하는 가장 큰 이유죠. 광주 팬들은 이정효 감독을 보면서 행복하기도 하지만, 안쓰러운 감정도 느낍니다. 감독 역할만 해도 벅찬데 환경적인 부분에 신경 써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쓴소리까지 내줘야 하곤 하니까. 힘들진 않습니까.
솔직히 힘들죠. 힘들어요. 그런데 저는 그런 부분을 하나씩 바꿔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선수들이 축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갈 수 있거든요. 지금보다 좋아져야 하잖아요. 제가 ‘축구에만 집중한다’, ‘축구만 가르친다’고 하면 바뀌지 않을 거거든요.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선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얘기하려고 합니다. 제가 가끔 선을 넘을 때가 있긴 하지만, 더 생각해서 말하려고 해요.
Q. 광주 팬들이 그래서 더 이정효 감독을 믿고 지지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편으론 많은 업무, 스트레스로 걱정하는 팬도 많은 게 사실인데요. 이정효 감독은 스트레스를 어떻게 풉니까.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게 골프입니다(웃음). 그렇다고 매일 필드에 나갈 순 없잖아요. 스트레스가 심할 땐 골프 연습장에서 땀 흘립니다. 드라이버로 열심히 공을 때려요. 그렇게 땀을 흘리고 나면 스트레스가 조금은 풀리는 것 같습니다. 1시간에 공 200개는 때리지 않나 싶네요.
Q. 요즘 광주 유튜브 채널에서 방영 중인 다큐멘터리 ‘불새’의 인기가 아주 많습니다. 이정효 감독이 최근 라커룸에서 선수들에게 전한 메시지가 인상적이었는데요. 이정효 감독이 22일 포항전을 마친 뒤 “환경 탓하지 말자. 우리가 축구에 더 미쳐야 한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선수들에게 항상 이야기하는 겁니다. 저는 기업구단에서 우리 팀으로 온 선수들에게 항상 물어봐요. ‘그때하고 무엇이 가장 다르냐’는 질문을 던지죠. 잔디를 비롯한 외부 환경 이야기가 나와요. 우리가 현실적으로 컨트롤 할 수 없는 부분들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좌절하면, 절대 발전할 수 없잖아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면서, 어떻게든 나아가보려고 하는 겁니다. 언제 어디서나 우릴 응원해 주시는 팬들을 위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고요. 선수들에게 “여기서 잘해서 더 좋은 대우 받고 다른 팀으로 가라”는 얘기도 합니다. 저는 선수들에게 “구단, 선수 개인 모두에 도움이 된다면 보내주겠다”고 하죠. 현실적인 얘기를 많이 하는 듯해요. 다만 “쫓겨서 가진 말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Q. 이 부분도 이정효 감독에겐 힘들 것 같습니다. 지난해 여름부터 엄지성, 이희균, 허 율, 정효연 등 핵심 선수 여럿이 다른 팀으로 향했잖아요.
힘들죠. 힘들어요.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합니다. K리그 팬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싶은 것이 하나 있는데요. 선수는 시즌 중에라도 자신의 꿈을 위해서라면 팀을 떠나도 괜찮지 않습니까. 팬들이 꿈을 위해 떠나는 선수에겐 응원까지 해주잖아요. 그런데 왜 감독은 자신의 꿈을 위해 떠나면 안 되는 건가요. 제가 한 번 물어보고 싶어요.
선수는 시즌 중 좋은 제안을 받으면 구단에 압력을 넣잖아요. 팬들은 ‘선수 발목 잡지 마라’고 하시고요. 감독이 시즌 중 좋은 제안을 받아서 간다고 해도 같은 반응일까요. 감독은 떠나면 ‘배신자’가 됩니다. 저는 우리만의 특이한 문화라고 봐요. 선수나 감독이나 꿈을 향해 나아가는 건 똑같잖습니까.
Q. 광주 팬들이 걱정할 수도 있을 듯한데요?
저는 상상을 많이 하는 편이거든요. 그런 생각도 해봤다는 겁니다. 제가 간다는 건 아니에요. 또 제가 시즌 중 다른 팀에서 제안을 받는다고 한들 성격상 팀을 떠나진 못할 겁니다.
Q. FC 서울 김기동 감독이 포항을 이끌었던 2021시즌 ACL 결승에서 알 힐랄을 상대했었습니다. 사우디 원정에서 치른 단판 결승전이었죠. 김기동 감독에게 그때의 기억을 물어보니 “다른 것보다 경계해야 할 게 분위기”라고 했어요. 사우디 관중들의 엄청난 응원에 압도되는 느낌까지 받았다는 거였습니다. 김기동 감독이 “경기 중엔 말소리가 전혀 안 들리는 환경이어서 완벽하게 준비한 상태로 경기에 들어가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저도 그 부분이 걱정이긴 합니다. 올 시즌 ACLE에서 우리의 원정 성적이 좋은 편이 아니기도 하고요. 다만 ACLE 8강까지 오면서 경험을 더했잖아요. 원정은 어떻게 준비하고 경기를 풀어가야 하는지 익혔을 거라고 봅니다.
저는 알 힐랄을 만나서 그런 기대감을 품고 있어요. 알 힐랄엔 개인 기량이 출중한 선수가 여럿이잖아요. 우리처럼 전술적이고 조직적인 팀이 알 힐랄을 만났을 때 누가 이길까 궁금해요. 팀 전술과 개인 역량의 대결이랄까. 팬들을 위해서라도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겁니다. 우리의 방식대로 온 힘을 다해 준비할 거예요.
Q. 사우디의 환경은 최상이잖아요. 이 부분은 광주처럼 빌드업을 중요시하는 팀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을까요.
많은 분이 ‘전력이 떨어지는 팀일수록 잔디가 안 좋은 구장에서 경기해야 이길 확률이 올라간다’고 생각하세요. 힘 대 힘으로 붙는다면 그럴 수도 있겠죠. 우리처럼 전술적이고, 조직적인 팀은 잔디가 좋을수록 경기력이 올라옵니다. 좋은 환경은 광주의 승리 가능성을 높인다고 봐요.
Q. 이정효 감독이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2019년 브라질에서 제수스 감독을 지켜보며 ‘언젠가 저런 감독과 맞대결해 보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꿈을 현실로 이루었어요.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지도자, 한국에서 흔치 않거든요. 비결이 있습니까.
저도 놀랐어요(웃음). 저는 앞서서도 말씀드렸지만 상상을 많이 해요. 저는 하루 1시간은 무조건 뜁니다. 러닝을 하거든요. 러닝할 땐 러닝에만 집중합니다. 음악 안 듣고, 티브이 안 봐요. 뛰면서 계속 생각합니다. 축구, 인생 등 다양한 생각을 하면서 뛰는 거죠. 성남 수석코치로 있던 2019년이었어요. 외국인 선수를 찾으러 브라질에 40일 정도 가 있던 때였죠.
그때 플라멩구 경기를 봤습니다. 당시 플라멩구 감독이 제수스였어요. 속으로 생각했죠. ‘저렇게 좋은 선수들을 데리고 축구하면 어떤 기분일까. 나도 나중에 제수스 감독처럼 능력 있는 외국인 지도자들과 경쟁하면 얼마나 행복할까’라고.
Q. ACLE는 각 리그의 자존심을 걸고 임하는 대회입니다. 한국에서 올 시즌 ACLE 리그 스테이지를 뚫은 팀은 광주가 유일해요. J1리그 3연패에 도전 중인 고베를 잡고 8강에 올랐습니다. K리그 모든 팬이 ACLE에서만큼은 광주를 응원합니다. 광주 팬을 포함한 모든 K리그 팬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제가 선수들에게 자주 하는 얘기인데요. 저는 선수들에게 “우린 광주 팬들, 광주 시민분들, 경기장에 찾아와주시는 모든 분, 또 K리그를 사랑하는 모든 분을 위해 항상 모든 걸 쏟아내야 한다”고 합니다. 환경을 비롯해 부족한 부분이 많은 거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런 환경에 굴하지 않고 무언가 하나둘 이룬다면, 우릴 응원해 주시는 모든 분께 조금이나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우리 축구로 많은 분께 위로와 용기를 드리고 싶어요.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포기하지 않으실 힘을 드리고 싶습니다. 자신만의 신념과 믿음이 있다면, 어떤 환경에도 굴하지 마시고 끝까지 나아가시라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요. 저는 경기력, 결과로 보여드려야 하는 사람이잖아요. 선수들과 함께 계속 좋은 메시지를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이근승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