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는 어떤 선수…의학박사 출신으로 유명

소크라테스는 2004-05시즌 깜작 현역 복귀를 했다. 그는 잉글랜드 가포스 타운에서 한 경기에 출전했다. 그의 사망 소식을 전한 가포스 타운 팀 페이지. 사진=가포스 타운 공식 홈 페이지 캡쳐
소크라테스는 2004-05시즌 깜작 현역 복귀를 했다. 그는 잉글랜드 가포스 타운에서 한 경기에 출전했다. 그의 사망 소식을 전한 가포스 타운 팀 페이지. 사진=가포스 타운 공식 홈 페이지 캡쳐
소크라테스는 한창 나이인 56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1980년대 초반 산타나 감독이 이끌던 브라질축구대표팀의 핵심선수였다. 당시 브라질은 소크라테스를 포함해 지코, 팔카우, 세레죠 등이 전성기를 맞았다. 팬들은 이들을 묶어 ‘황금의 4중주’라고 불렀다. 소크라테스는 이들 중에서 개성이 강한 선수로 꼽혔다. 당시 축구선수들 중에서 큰 키에 속한 193cm의 신장에 덥수룩한 수염까지 기른 채 그라운드에서 나섰기 때문에 팬들은 그를 기억하기 쉬웠다. 지코가 골잡이 노릇을 하고 팔카우가 수비형 미드필더에 가까웠다면 소크라테스는 공격형 미드필더가 더 어울렸다. 장신임에도 브라질 선수 특유의 기술까지 갖춘 그는 양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었다.

상파울루에서 태어난 그는 1974년 보타포고에 입단하면서 프로선수로 활동을 시작했고 1979년 코린티아스로 이적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소크라테스는 코린티아스 유니폼을 입고 1984년까지 뛰면서 297경기에 나와 172골을 넣었다. 그 기간 동안 팀은 브라질리그에서 두 차례(1979, 1982년) 우승컵을 품에 안았고 소크라테스는 1983년 남미 최우수선수에 뽑혔다.

그는 화려한 클럽 경력을 갖고 있었는데 대표팀 데뷔는 늦었다. 이유는 다른 선수들과 견줘 기량이 떨어진 게 아니라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소크라테스의 집안은 의사가문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그도 의학 공부를 시작했다. 소크라테스는 아일랜드 더블린대학에서 유학했고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그는 이후 의학 뿐 아니라 철학과 법학까지 공부했다.

그는 24세였던 1979년 처음 브라질대표팀에 선발됐고 1986년 멕시코월드컵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그는 월드컵과 인연은 별로 없었다. 두 차례 월드컵에 나갔지만 우승과 거리가 멀었다.

특히 1982년 스페인월드컵에선 주장을 맡아 2차 조별리그까지 무패를 달리면서 우승 후보 영순위에 꼽혔으나 파울로 로시가 이끄는 이탈리아에게 패해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에선 지코와 당시 유망주로 꼽히던 카레카 등과 함께 우승에 도전했으나 미셀 플라티니가 이끌던 프랑스와 8강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져 월드컵 무대를 마감했다. 그는 당시 승부차기에서 실축하는 등 아픔이 있었다. 대표팀 통산 성적은 60경기에 나와 22골을 기록했다.

소크라테스는 축구 뿐 만 아니라 당시 군사독재정권이 권력을 잡고 있던 브라질 정치 상황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먼저 코린티아스 팀 내에서 민주적인 방법으로 선수단의 의견을 수렴하는 제도를 정착시키는데 앞장섰다.

소크라테스의 이런 움직임은 브라질 민주화 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그러나 브라질 군부는 그런 그를 고깝게 봤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외부의 압력으로 1984년 대표팀에서 제외됐고 그해 코린티아스를 떠나 이탈리아 세리아 A 피오렌티나로 팀을 옮겼다.

그는 피오렌티나에서 이름값과 견줘 활약도는 조금 모자랐다. 25경기에 나와 6골에 그쳤다. 소크라테스는 한 시즌 만에 이탈리아 생활을 접고 다시 브라질로 돌아갔다. 브라질 군부가 민간 정부에게 권력을 이양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는 플라멩구와 산토스를 거쳐 자신이 가장 먼저 프로생활을 시작한 보타포고에서 1989년 현역 은퇴했다. 또한 소크라테스는 2004-05시즌 잉글랜드 프로축구 북부지역리그에 속한 가포스 타운과 계약을 맺어 그라운드에 깜짝 복귀한 적도 있다.

소크라테스는 현역 시절부터 술과 담배를 즐겼다. 그는 종종 “이 두 가지가는 내게 그라운드 안팎에서 힘을 준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결국 이 습관이 소크라테스의 명을 단축시킨 셈.

그는 이미 소화관 출혈 증상으로 8월에 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당시 그를 담당했던 상파울루 소재 앨버트 아인슈타인 병원 관계자는 “술과 담배를 끊지 않는다면 큰일을 당할 수 있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결국 소크라테스는 장출혈에 따른 페혈증 때문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부인과 6명의 자녀를 뒀고 친 동생인 라이는 1993년 코파아메리카와 1994년 미국월드컵에 브라질대표팀 미드필더로 참가한 경력이 있다. 라이는 형의 뒤를 이어 대표팀 주장을 맡았었다.

[MK스포츠= 류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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