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최민규 전문위원] 메이저리그는 지난 시즌부터 자동 고의4구 제도를 도입했다.
고의4구는 투수가 타자와 승부하지 않고 치지 못할 코스로 볼을 네 개 던져 1루를 밟게 하는 플레이다. 주로 점수 차가 적은 접전에서 주자가 스코어링 포지션에 있지만 1루가 비어 있을 때 시도된다.
타석에 엄청난 강타자가 있다면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도 드물게 고의4구가 나온다.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에선 모두 10차례 이런 고의4구가 나왔다. 10번 중 4번은 통산 고의4구 1위(688개) 배리 본즈가 기록했다. 본즈는 1998년 5월 25일 주자 만루에서 고의4구를 얻기도 했는데, 지금까지 메이저리그에서 딱 6번만 나온 기록이다.
어떤 경우든 투수는 고의4구를 위해 최소 공 4개를 던져야 했다. 하지만 바뀐 규칙에서는 감독이 수신호로 심판에게 고의4구 사인을 내면 타자는 곧바로 1루로 걸어나갈 수 있다. ‘4구’지만 투수에겐 투구 수가 기록되지 않는다.
한국야구위원회(KBO)도 지난 5일 규칙위원회를 열고 2018년 시즌부터 자동 고의4구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일본프로야구(NPB)는 이에 앞선 지난 1월 같은 결정을 했다. 취지는 경기 시간 단축이다.
고의4구 규칙 변경에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세 나라 모두 마찬가지다. 고의4구를 위해 멀리 던진 공을 타자가 펄쩍 뛰다시피하며 배트를 휘둘러 안타를 만들거나, 고의4구가 폭투가 돼 주자가 홈으로 들어오는 진귀한 장면은 이제 볼 수 없다. 무엇보다 룰 개정으로 얻는 시간 단축 효과가 적다.
2015년 5월 14일 잠실구장에서 NC 투수 이민호는 8회말 LG 이병규를 고의4구로 걸려 보냈다. 이민호가 이병규에게 첫 볼을 던지고 다음 타자 잭 핸너핸에게 초구를 던지기까지 소요된 시간은 딱 40초였다. 지난해 KBO리그 전체 720경기에서 고의4구는 185회만 기록됐다. 경기당 0.26개다. 즉 규정 변경으로 단축되는 시간은 리그 전체로 2시간 3분, 경기당으론 10.3초에 불과하다. 실익이 없다.
한 분석(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320790)에 따르면 KBO리그에서 경기 시간이 늘어나는 가장 큰 원인은 투수들의 투구 간격이 길기 때문이다. 투수와 타자 모두 공을 던지거나 칠 준비를 하는 데 있어 메이저리그에 비해 시간이 오래 걸린다. 벤치에서 작전 사인도 많이 나온다. 고의4구는 큰 변수가 되지 못한다.
워싱턴포스트는 메이저리그가 기존 ‘고의4구’를 폐지한 직후 이를 비판하는 분석 기사를 실었다. 제목은 “고의4구를 죽인 메이저리그, 전통을 잃고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였다.
물론 스포츠 팬들이 현장이나 TV 중계에서 느끼는 속도감은 물리적인 시간과는 다소 다르다. 잘 만든 러닝 타임 세 시간 영화는 못 만든 한 시간짜리 영화보다 훨씬 덜 지루하다. 그리고 고의4구가 나오는 상황은 대체로 관객들의 몰입도가 높아지는 ‘승부처’다. MBC SPORTS+는 지난해 자동 고의4구 룰이 적용된 메이저리그 경기를 중계했다. 송재우 해설위원은 “공 네 개를 던지지 않고 바로 다음 타자로 이어지니 몰입도가 높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임영환 PD는 “제작자 입장에선 고의4구 상황에서 투수와 타자의 표정, 긴장한 대기 타석 타자의 눈길 등 시청자들에게 흥미를 줄 수 있는 요소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긍정론과 부정론이 섞여 있다.
자동 고의4구로 메이저리그나 KBO리그가 얻을 것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거꾸로 말하자면 잃을 것도 많지 않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나가시마 시게오는 1960년 한 시즌에 세 번 고의4구를 노리고 던진 공을 때려 안타로 만들었다. 나가시마의 기록이 아직도 회자되는 이유는 ‘세 번’이나 해냈기 때문이다. 배리 본즈의 만루 고의4구처럼 한 시즌에 한 번도 일어나기 어려운 플레이다. 야구의 ‘재미’에서 매우 부차적이다.
‘얻을 것이 많지 않은데 왜 바꿔야 하는가’와 ‘잃을 것이 많지 않은데 왜 바꾸지 못하는가’라는 입장 중 어느 편이 맞는지를 판단하는 건 늘 쉽지 않은 일이다. 스포츠의 중요한 본질은 규칙의 존중이며, 그래서 선수나 지도자 뿐 아니라 팬과 언론도 규칙 변경에서는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금은 야구의 전통으로 받아들여지는 고의4구는 원래 야구에서 환영받지 못한 플레이였다.
포수는 투수가 공을 던질 때까지 캐처스 박스 안에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한다. 지금 캐처스 박스는 4각형이지만 1919년 이전에는 아랫변이 긴 삼각형이었다. 면적은 현재보다 훨씬 넓었다. 포수는 강한 타자가 나오면 삼각형 끄트머리에 자리를 잡고 타자가 칠 수 없는 코스로 공을 요구해 볼넷으로 걸리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