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9년 이야기다.
삼성에서 해태(현 KIA)로 트레이드 된 양준혁이 고향 대구 구장을 처음 찾는 경기였다.
양준혁을 보기 위해 많은 팬들이 모였다. 양준혁은 이승엽 이전, 최고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 있는 이승엽 존. 사진=삼성 라이온즈 팬들의 환호에 감상에 젖어 있던 양준혁은 훈련 볼 몇 개를 주워 팬들에게 던져줬다. 자신을 잊지 않고 대구 구장을 찾아 준 팬들에 대한 작은 답례 였다. 그런데 그런 양준혁에게 삼성 직원이 다가왔다. 그의 입에선 의외의 말이 나왔다.
"연습구도 엄연히 삼성 소유의 볼이다. 타 팀 선수가 함부로 팬들에게 던져줘선 안된다. 더 이상은 팬들에게 공을 던져주지 말라."
양준혁은 큰 상처를 받았다.
자신의 피가 '푸른 피'라고 말했을 정도로 팀 충성도가 강했던 양준혁이었다.
선수협 창립에 앞장서며 미운 털이 박히기 전까지 팀의 최고 스타 플레이어로 존중을 받아왔다. 그런 삼성에서 의외의 반응이 나온 것이다.
연습구도 홈 구단 소유물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10년 가까이 팀을 위해 헌신했던 리빙 레전드의 팬 서비스를 막을 정도로 대단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삼성은 그마저도 허용하지 않았다. 양준혁은 실망감에 고개를 떨굴 수 밖에 없었다.
이만수 전 감독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은퇴 무렵 구단과 껄끄러운 관계가 됐던 이만수 전 감독은 지도자로서 삼성에 돌아오지 못했다.
말도 안 통하는 미국 땅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조금씩 경력을 쌓아가고 있었지만 끝내 이만수는 삼성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영구 결번도 대단히 어렵게 이뤄졌다.
팬들의 끊임 없는 요구와 시위까지 더해지자 어쩔 수 없이 이만수의 등 번호 22번을 영구 결번으로 삼기로 했다. 이만수 전 감독의 영구 결번이 결정된 것은 그가 은퇴하고도 한참이 지난 2003년이었다.
그만큼 구단이 내켜하지 않는 결정이었다.
삼성은 그런 구단이었다. 레전드에 대한 예우를 중시하지 않는 팀이었다. 레전드와 이별에 서툰 구단 이었다.
이승엽이 은퇴 이후 삼성에서 코치를 하지 못했던 것도 같은 연장 선상에서 해석됐다. 이승엽 같은 거물을 코치로 거느릴 만한 인물을 감독으로 선임하지 못했던 것도 이유가 됐지만 기본적으로 레전드와 동행하는 법에 서툰 것이 삼성이었다.
그런 삼성이 결국 이승엽을 두산에 내주고 말았다. 이승엽의 감독 커리어가 삼성이 아닌 두산에서 시작하게 됐다.
여기까지는 늘 삼성이 하던 방식과 비슷했다.
그러나 이전과는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 있는 이승엽 벽화를 지우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제는 타 팀의 감독이 됐고 두산 선수들의 홈런이 벽화 앞으로 날아갈 수도 있다. 삼성에겐 두 배의 아픔이 될 수 있는 장면이 그려졌다.
하지만 삼성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승엽은 삼성의 유산이자 역사"라는 말로 레전드에 대한 마지막 예우를 했다.
레전드와 이별에 서툴렀던 삼성 답지 않은 행보였다. 그들이 벽화를 지우지 않기로 한 것을 '큰 결단'이라고 표현한 이유다.
앞으로는 달라질 삼성을 기대하게 만든 결정이었다. 레전드와 이별이 아름답지 못했던 삼성이 새로운 철학을 가진 구단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한 결정이었다.
벽화 정도 하나 그리고 지우는 문제가 아니다. 팀이 갖고 있는 철학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결단이었다. 삼성의 결정에 박수를 보내는 이유다.
삼성이 달라지고 있다. 이승엽 벽화 문제는 그 변화의 하나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이제 삼성에서도 레전드와 아름다운 이별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정철우 MK스포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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