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보드를 사랑했던 집안에서 태어난 최가온. 결국 17세 나이에 대한민국 최초의 기록을 세우는 영광을 안았다. 그 뒤에는 애정가득한 아버지의 잔소리가 있었다.
최가온은 13일(한국시간)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에서 91.25점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의 우상이었던 클로이 김(미국·88.00점)을 꺾고 최정상에 올랐다. 최가온이 울린 애국가는 이번 대회 한국의 첫 금메달이었다. 또, 17세 3개월의 나이로 클로이 김이 2018 평창 대회 때 세운 종목 최연소 금메달(17세 10개월) 기록도 7개월 앞당겼다.
한국의 최초 설상 금메달의 영광까지. 최가온의 금빛 질주는 순탄치 않았다. 그는 예선에서 82.25점을 획득했다. 24명 중 6위를 기록해 결승으로 향했다. 12명이 나서는 결승은 각 선수가 1~3차 시기까지 치러 최고점을 얻어야 메달을 딸 수 있는 방식이다.
1차 시기에서 최가온은 보드가 파이프 벽에 걸리며 추락했다. 부상 우려가 뒤따랐다. 2~3차 시기 출전이 쉽지 않아 보였으나 그는 훌훌 털어내고 다시 일어섰다. 1차에서 10.00점을 얻은 뒤 2차 시기에서도 연기 도중 착지 과정에서 또 쓰러지며 아쉬움을 남겼다.
최가온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3차 시기를 위해 다시 출발선에 올랐다. 파이프를 향해 질주를 시작한 그는 900도와 720도 회전을 구사하며 실수 없이 완주했다. 밝은 미소를 보인 최가온의 3차 시기 점수는 90.25점. 고득점을 받아냈다. 2차 시기까지 11위에 머물렀던 그는 단숨에 1위로 오르며 대역전에 성공했다.
여자 하프파이프 최강자 클로이 김은 2차 시기에서 넘어졌지만, 1차 시기에서 88.00점으로 선두를 지켰다. 최가온의 3차 시기 후 2위로 밀려났다. 클로이 김은 선두 탈환을 위해 3차 시기에 나섰으나 연기 도중 넘어지며 완주하지 못했다. 그렇게 최가온은 금메달을 목에 걸며 눈물을 보였다.
최가온이 이번 대회 한국의 첫 금메달과 한국의 설상 첫 금메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가족의 영향이 컸다. 그의 어린 시절 롤모델은 ‘피겨 퀸’ 김연아다. 피겨스케이팅 선수를 꿈꾸던 그는 스노보드 매력에 빠지면서 은반이 아닌 설상에 설 운명이 됐다. 그 배경에는 스노보드를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다. 최가온은 7살 때 첫 스노보드를 경험했고, 이듬해 하프파이프에 도전하게 됐다.
최가온은 과거를 돌아보며 “어린 시절 하프파이프 종목을 몰랐는데 아빠가 젊은 시절 타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빠의 말을 듣고 시작하게 됐다”라며 “처음 파이프에 들어갈 때 너무 웅장하고, 선수들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 그때부터 피겨 선수가 되겠다는 걸 잊고 스노보드 선수가 되기로 결심했다”라고 회상했다.
최가온은 4남매 중 셋째다. 둘째인 오빠는 엘리트 선수는 아니지만 대학생 스노보드 대회 출전 경력이 있고, 막내인 남동생도 스노보드를 타고 있다고 알렸다. 아버지부터 시작된 스노보드 사랑이 자식까지 이어진 셈이다.
금메달을 목에 걸고 눈시울을 붉힌 최가온은 가장 먼저 아버지에게 향했다. 스노보드의 길로 이끈 아버지에게 메달을 걸어주며 진한 포옹을 나눴다. 최가온은 아버지에 대해 “아빠는 매일 저만 본다. 코치님들보다 저를 더 잘 안다. ‘(기술을) 한 번 더 시도해야 한다. 그래야 더 익힐 수 있다’, ‘너 지금 라이딩 불안하다. 조금 더 분발해야 한다’ 등 매일 말한다. 최근에는 올림픽을 앞두고 아빠가 매일 아침저녁마다 ‘내일모레가 올림픽인데…’라며 잔소리도 했다”라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그래도 아빠 덕분에 대회에서 힘을 낼 수 있었다. 요리를 잘해서 외국에 나가도 한식을 자주 먹을 수 있었다. 다른 선수들은 시리얼에 빵을 먹고 왔지만, 아빠가 ‘아침에 무조건 고기를 먹어야 한다’며 새벽부터 아침 식사를 준비해 줬다. 그래서 항상 든든하게 고기를 먹고 훈련할 수 있었다”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딸이 걸어준 금메달에 아버지 최인영씨도 감격했다. 그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하늘을 날 것 같다. 1차 시기에 딸이 상처받아서 그만두면 어쩌나 걱정도 했는데, 이렇게 돼 꿈꾸는 것 같다”라며 “(최)가온이는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다. 스노보드를 특별히 배우지 않았는데도 중심을 잡길래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하프파이프를 타 볼만한 실력이 되겠다고 태워본 게 지금까지 왔다”라고 말했다.
이어 “2018년 평창 대회 때 클로이 김의 아버님(김종진씨)을 뵙고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딸을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챙겨줘야 더 잘할 수 있다’는 조언을 받았다. 한 번 따라가 봤더니 왜 그런지 실감이 났다. 그 이후 계속 동행했다”라고 했다.
최인영 씨는 딸의 금빛 질주를 보면서는 “(1, 2차 시기에) 2024년 초 스위스 월드컵에서 허리를 크게 다쳤을 때와 같은 기술을 시도하다가 넘어졌다. 데자뷔가 느껴져 놀랐다”라며 “서서 내려오길래 조금은 안도했다. 무릎과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간다고 해서 다시 보드를 태우기 위험하다고 생각도 했다. 1등 하려고 하지 말고 레벨을 낮추더라도 아름답게 끝까지 타는 모습만 보자고 했는데, 3차 시기에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랑스럽고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전했다.
[김영훈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