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 배우의 사생활 논란으로 무려 5년간 방송국 지하 창고에 차갑게 갇혀있던 비운의 드라마가 마침내 한국 시청자들과 마주한다.
신작 편성 지연이라는 JTBC의 다급한 틈새를 절묘하게 비집고 들어오면서다.
JTBC는 지난 주말부터 토일드라마 시간대에 이른바 ‘드라마 보석함’이라는 코너를 신설하고, 과거 구작들을 연이어 편성하는 파격적인 ‘창고 대방출’을 시작했다.
최근 신드롬을 일으킨 변우석과 박지훈의 풋풋한 떡잎 시절을 볼 수 있는 7년 전 종영작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을 성공적으로 재활용한 데 이어, 이번에는 단 한 번도 국내 전파를 타지 못했던 비운의 미방영작 ‘날아올라라 나비’를 오는 9월 19일 밤 10시 40분 정식 방영하기로 확정 지었다.
‘날아올라라 나비’는 두터운 마니아층을 보유한 ‘청춘시대’, ‘연애시대’의 박연선 작가가 집필한 작품이다. 미용실이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손님들의 화려한 변신을 돕는 헤어 디자이너와 인턴들의 치열한 생존기와 따뜻한 성장기를 담아낸 힐링 휴먼극이다.
김향기, 최다니엘, 오윤아 등 탄탄하고 매력적인 주연진을 앞세워 지난 2020년 9월부터 야심 차게 첫 촬영에 돌입했지만, 이들의 시계는 이듬해인 2021년 전혀 뜻하지 않은 암초를 만나 멈춰 섰다.
극 중 공대 출신 디자이너 젠 역을 맡은 주연 배우 심은우가 학교 폭력 가해 의혹에 휩싸인 것이다. 당시 심은우 측은 물리적 폭력이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적은 없다며 학폭 의혹을 부인하면서도, “미성숙한 언행으로 상처를 준 것에 사과한다”는 모호한 입장을 냈다가 오히려 진실 공방의 깊은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이후 심은우는 경찰의 명예훼손 불송치 결정 등을 근거로 들며 학폭 가해자 누명을 벗었다고 거듭 호소했다. 하지만 논란과 진실 공방이 지루하게 길어지는 사이, 대중의 차가운 시선을 의식한 방송사는 드라마의 국내 편성을 무기한 보류해 버렸다.
사람을 치유하는 따뜻한 휴먼 드라마가 역설적이게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다는 ‘학폭 논란’에 발목이 잡힌 것이다. 결국 이 기대작은 정작 안방의 한국 시청자들은 보지 못한 채, 2022년 대만 방송 플랫폼을 통해서만 쫓기듯 선공개되는 굴욕적인 꼬리표를 달아야 했다.
주연 배우들의 오매불망 기도, 신작 공백이 만든 ‘기적’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이 보이지 않던 길고 어두운 터널 속에서 배우들은 결코 작품의 끈을 놓지 않았다. 주연 배우 최다니엘은 지난 2024년 자신의 SNS에 출연진들과 함께한 사적인 모임 사진을 올리며 “방영할 때까지 기원 1일 차”라는 묵직하고 간절한 글을 남겼다. 이에 오윤아 등 동료 배우들도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수백 명의 스태프와 배우들이 흘린 땀방울이 온전히 세상의 빛을 보길 묵묵히 기다렸다.
그리고 2026년 가을, 예기치 않은 곳에서 기회의 문이 열렸다. 일부 신작 드라마들의 제작 및 후반 작업 지연으로 주말 황금 시간대에 뼈아픈 신작 공백이 생겨버린 JTBC가, 고민 끝에 이 ‘미방영작’의 봉인을 전격적으로 풀기로 결정한 것이다.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작품을 가슴에 품고 있던 배우들의 오랜 기도가 방송국의 현실적인 편성 위기와 맞물려 마침내 결실을 맺게 됐다.
위기가 만든 반전 카드, 주말 안방극장 역습 통할까
‘날아올라라 나비’의 전격 등판은 앞서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 재방영으로 쏠쏠한 시청률 재미를 본 JTBC의 영리하고도 고육지책에 가까운 편성 전략이다. 하지만 5년 전 기획되고 촬영된 작품이 2026년 현재의 시청자들에게 자칫 ‘철 지난 촌스러움’으로 다가오진 않을지 우려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그러나 ‘연애시대’와 ‘청춘시대’가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촌스럽지 않은 명작으로 회자되듯, 인간 군상의 촘촘한 내면을 꿰뚫어 보는 박연선 작가 특유의 찰진 대사와 따뜻한 통찰력은 시간의 흐름을 타지 않는 강력한 무기다.
수백억 원의 제작비를 쏟아부은 대작 신작들이 줄줄이 시청률 가뭄에 허덕이며 고전을 면치 못하는 2026년 하반기 안방극장. 학폭 논란의 멍에를 짊어지고 무려 5년간 지하 창고를 견뎌낸 이 짠내 나는 미용실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말 밤 시청자들에게 어떤 따뜻한 위로와 신선한 화제성을 안겨줄지 오는 9월 19일 그 진짜 뚜껑이 열린다.
[MK스포츠 홍동희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