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최불암, 드라마 끝나도 가족이었다…22년 ‘아내’·39년 ‘딸’

고(故) 최불암의 빈소에 22년간 드라마 속 아내였던 김혜자와 39년간 딸처럼 지낸 김혜수가 찾아와 마지막 인사를 건넨 가운데, 작품이 끝난 뒤에도 가족처럼 이어졌던 동료와 후배들의 인연이 조문과 SNS 추모글로 되살아났다.

최불암은 지난 29일 밤 서울 강서구의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던 중 별세했다. 향년 87세. 고인의 빈소는 30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0호실에 마련됐다.

이날 저녁 빈소를 찾은 김혜자는 22년간 부부로 호흡을 맞춘 고인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고(故) 최불암의 빈소에 22년간 드라마 속 아내였던 김혜자와 39년간 딸처럼 지낸 김혜수가 찾아와 마지막 인사를 건넨 가운데, 작품이 끝난 뒤에도 가족처럼 이어졌던 동료와 후배들의 인연이 조문과 SNS 추모글로 되살아났다. 사진=공동취재단

김혜자는 1980년부터 2002년까지 방송된 MBC ‘전원일기’에서 최불암과 부부로 출연했다. 최불암이 양촌리 김 회장이라면 김혜자는 그의 아내 이은심이었다. 두 사람은 22년 동안 안방극장에서 한집에 사는 부부로 시청자들과 만났다.

김혜자는 조문을 마친 뒤 고인이 한 번만이라도 다시 눈을 뜨는 모습을 보고 싶다며 그리움을 드러냈다.

그는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죽으면 다시 만날 테니 마지막이라고 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이어 “곧 만나자고 얘기하고 싶다”며 고인과의 추억을 기억하며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22년 동안 드라마 속에서 부부로 살았던 두 사람의 마지막 인사는 그렇게 이루어졌다.

또 다른 ‘딸’ 김혜수도 아버지처럼 여겼던 고인을 떠나보내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김혜수는 이날 일찍 빈소를 찾아 오랜 시간 유족들 곁에 머물렀다. 오후 한 차례 빈소를 나올 때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포착됐고, 저녁에도 조문을 이어간 뒤 다시 빈소로 들어가는 모습까지 목격됐다.

빈소 밖으로 나왔을 때는 눈가가 퉁퉁 부어 있었다. 김혜수는 별도의 인터뷰 없이 고인을 배웅했다.

김혜수와 최불암 부부의 인연은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혜수는 KBS 드라마 ‘사모곡’에서 최불암의 실제 아내인 배우 김민자와 모녀로 호흡을 맞췄다. 어린 신인 배우였던 김혜수를 김민자가 딸처럼 살뜰히 챙겼고, 작품이 끝난 뒤에도 관계가 이어지면서 남편 최불암과도 가족처럼 가까워졌다.

김혜수는 2021년 KBS1 ‘한국인의 밥상’ 10주년 특집에서 최불암과 김민자를 부모 같은 존재라고 소개했다.

그는 마음에 빈자리가 크게 생겼을 때 자신을 자식처럼 품어준 사람들이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최불암이 보내준 문자 메시지도 모두 저장해뒀다고 밝혔다.

고인이 보내는 문자가 한 편의 시 같아서 받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보고 또 보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1987년부터 2026년까지 39년의 인연이 이어졌다.

‘전원일기’에서 김 회장의 둘째 아들 용식이를 연기했던 유인촌도 빈소가 마련되자마자 찾아왔다.

유인촌은 배우로 데뷔했을 때부터 최불암이 아버지 역할을 맡았으며, 이후 ‘전원일기’에서도 22년간 부자 관계로 살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평상시에도 늘 아버지라 불렀다”며 실제로도 가족처럼 여겼던 고인을 떠나보내는 마음을 전했다.

건강이 나아지면 겨울쯤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최근 몇 달 동안 찾아뵙지 못한 채 부고를 받았다는 아쉬움도 털어놨다.

막내아들 금동이를 연기했던 임호에게는 이루지 못한 약속이 남았다.

임호는 해를 넘기기 전에 ‘김 회장님네’ 식구들과 함께 최불암을 찾아뵙자고 이야기하던 중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만남을 이루기도 전에 고인이 세상을 떠났다. 임호는 부모를 여읜 것처럼 마음이 아프다며 살아계실 때 더 잘해드리지 못한 일을 후회했다.

임호는 자신의 SNS에 ‘전원일기’ 출연진이 함께 웃고 있는 사진도 공개했다.

사진 속에는 최불암과 김혜자, 김용건을 비롯해 먼저 세상을 떠난 김수미의 모습도 담겨 있었다. 2023년 ‘회장님네 사람들’에서 다시 만났던 배우들의 환한 얼굴이 고인을 떠나보낸 날 다시 공개된 것이다.

‘전원일기’의 맏며느리였던 고두심 역시 빈소를 찾아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고두심은 최불암이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일에 앞장섰으며, 자신도 고인의 영향으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회상했다.

배우 나문희는 주변의 부축을 받으며 장례식장을 찾았다.

나문희는 “우리의 자랑이었는데”라며 먼저 떠난 고인이 섭섭하다고 말했다. 이어 함께한 추억이 너무 많다면서 잘 간직하겠다는 말과 함께 작별을 고했다.

나문희와 최불암은 2014년 SBS 드라마 ‘기분 좋은 날’에서 부부로 호흡을 맞춘 인연도 있다.

거의 40년 동안 같은 동네에서 살았다는 이계인은 빈소에서 아내 김민자를 마주하자 눈물이 쏟아졌다고 털어놨다. 오랜 세월 함께 지내온 형님 같은 배우가 자신보다 먼저 떠난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마음이었다.

차인표는 SNS에 29년 전 드라마 속 가족사진을 꺼내 놓았다.

1997년부터 방송된 MBC ‘그대 그리고 나’ 출연진이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고인이 된 최진실이 최불암의 팔짱을 낀 채 웃고 있고, 곁에는 박상원과 차인표, 송승헌, 서유정 등이 자리하고 있다.

최불암은 이 작품에서도 자녀를 둔 아버지 박재천을 연기했다.

차인표는 당시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자 최불암이 외부 행사에 함께 가달라고 부탁했던 일을 떠올렸다.

선배의 부탁에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던 차인표에게 최불암은 이번에 함께 가주면 다음번에는 자신도 같이 가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차인표는 까마득한 후배도 자신과 동등한 인격체로 대해주던 선배였다고 기억했다. 29년 전 드라마 속 가족사진과 함께 남겨진 것은 고인이 후배를 대하던 방식이었다.

빈소에는 박근형과 강석우, 박은수 등 오랜 동료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박근형은 함께 활동했던 동료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는 현실이 착잡하다며 후배들을 세심하게 배려했던 고인을 떠올렸다. 강석우는 생전에 더 깍듯이 모시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고 했다.

빈소 밖에서도 가족을 떠나보내는 듯한 인사가 이어졌다.

KBS1 ‘한국인의 밥상’을 이어받은 배우 최수종은 30일 자신의 SNS에 최불암의 사진과 추모글을 올렸다.

최불암은 2011년부터 약 14년 동안 ‘한국인의 밥상’을 진행하며 전국의 밥상과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삶을 전했다. 지난해 4월부터는 최수종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최수종은 고인이 배우라는 이름을 넘어 이웃들의 땀방울과 밥상 위의 삶을 깊이 아꼈던 선배라고 기억했다.

그는 큰 그늘 같은 선배와 함께 울고 웃을 수 있어 행복하고 감사했다며 글의 마지막에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세 번 반복했다.

배우 소유진은 SNS에서 고인을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소유진은 2012년 JTBC 드라마 ‘해피 엔딩’에서 최불암과 함께 출연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을 손녀처럼 예뻐해줬다고 밝혔다.

그는 하얀 국화꽃 사진과 함께 고인을 “나의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천국에서 편히 쉬시라는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팝페라 가수 임형주에게 최불암은 ‘이모부’였다.

김민자를 이모라고 부르며 가깝게 지냈던 임형주는 자신의 SNS에 몇 달 전 병문안에서 나눈 인사가 마지막 작별이 될 줄 몰랐다고 적었다.

최불암이 아내 김민자와 함께 자신의 독창회에 찾아와 응원해주던 일도 떠올렸다. 임형주는 고인이 수많은 국민에게 따뜻한 아버지가 돼준 데 감사하면서도, 마지막에는 자신이 부르던 ‘이모부’에게 사랑한다는 인사를 남겼다.

작곡가 윤일상은 ‘수사반장’과 ‘전원일기’를 통해 오랜 세월 사람들의 삶과 함께했던 고인을 기억했다.

배우 김혁은 작품에서 직접 호흡을 맞추지는 못했지만 방송국에서 마주칠 때마다 따뜻하게 인사를 받아주던 선배의 모습을 떠올렸다.

누군가에게는 22년간 드라마 속 남편이었고, 누군가에게는 39년 동안 곁을 지켜준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또 다른 후배들은 아버지와 할아버지, 이모부라는 호칭으로 최불암을 기억했다.

고인은 실제 삶에서도 오랫동안 어린이들을 돌보는 일에 힘썼다.

1981년 ‘전원일기’에서 금동이를 입양하는 이야기를 계기로 초록우산과 인연을 맺었고, 1985년부터 40여 년간 전국후원회장으로 활동하며 아동 지원에 앞장섰다.

고인의 장례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5일간 치러진다. 발인은 11월 2일 오전 7시 40분이며, 서울 여의도성당에서 장례미사를 마친 뒤 초록우산 본부에서 마지막 작별 인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장지는 경기 파주시 동화경모공원이다.

김혜수가 2021년 ‘한국인의 밥상’에서 공개했던 최불암의 문자도 다시 떠오른다.

당시 최불암은 해외로 떠나는 김혜수에게 먼 길을 오가는 건강을 걱정하며, 비행기 안에서는 몸을 쉬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가을과 여행, 그리움을 이야기하던 긴 문자 끝에는 딸처럼 아끼던 후배에게 건네는 한마디가 남아 있었다.

“그럼 다녀와 혜수가 꾼 꿈 얘기 듣자고!”

[김승혜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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