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자의 작품·연출관은 창작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영화, 드라마, 예능 모두 마찬가지죠. 알아두면 이해와 선택에 도움이 되는 연출자의 작품 세계. 지금부터 ‘디렉토리’가 힌트를 드릴게요. 뤽 베송 감독은 누벨바그의 나라 프랑스에서 태어났지만 프랑스 고유의 느낌보다 할리우드 색채가 더 짙다. 무려 100편에 달하는 영화에 참여하며 세계적인 감독 반열에 올라서며 내놓는 작품마다 평단과 관객의 기대를 받는 감독이다.
그의 영화를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 여성 캐릭터들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이다. 뤽 베송 감독이 그린 여성들은 가끔 울고 웃으며, 지속적으로 투쟁한다. 미성년부터 성년에 이르기까지 투쟁의 최전방에 선 여성들의 얼굴에는 구구절절한 사연이 아닌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결연함이 엿보인다.
영화 ‘안나’ 뤽 베송 감독 사진=ⓒAFPBBNews=News1
◇ 행복을 열망하는 마틸다와 ‘레옹’(1994) 1983년 흑백영화 ‘마지막 전투’로 데뷔한 뤽 베송 감독은 ‘그랑블루’(1988), ‘니키타’(1990), ‘레옹’, ‘제5원소’(1997), ‘잔 다르크’(1999) 등 상상력의 색채가 짙고 개성이 강한 영화들을 연달아 내놓으며 거장 반열에 올랐다.
‘레옹’은 개봉 당시 전 세계적으로 평단과 관객 모두의 호평을 받으며 프랑스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와 경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화분을 끼고 걷는 레옹과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는 마틸다의 대사와 눈빛, 엔딩곡인 스팅의 ‘Shape Of My Heart’는 지금까지도 강렬한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다.
레옹(장 르노 분)의 옆집 소녀 마틸다(나탈리 포트만 분)는 고작 12살 나이에 자신의 가족이 몰살당하는 현장을 목격한다. 가까스로 목숨은 건졌지만 모든 걸 잃은 마틸다는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인생을 보낸다. 가족의 복수를 꿈꾸는 마틸다는 글을 모르는 레옹에게 글을 가르쳐주는 대가로 복수하는 법을 배우고, 두 사람은 점점 가족보다 긴밀한 관계가 된다.
영화 ‘레옹’ 포스터 사진=영화 ‘레옹’
뤽 베송 감독이 그린 마틸다의 얼굴은 강인하다. 비록 마른 몸과 작은 키에 능력보다 의욕이 앞서는 12살 소녀이지만 가족의 원수를 갚고, 사랑하는 레옹을 지키겠다는 의지는 그 어떤 킬러의 총보다 강력한 무기다. 가질 수 없는 행복을 열망한 마틸다와 레옹. 뤽 베송이 엮어낸 두 사람의 냉소적인 삶의 태도는 역설적이게도 한없이 뜨겁다.
영화 ‘루시’ 포스터 사진=영화 ‘루시’
◇ 인간의 근원을 묻는 ‘루시’(2014) 루시(스칼레 요한슨 분)는 극악무도한 미스터 장(최민식 분)이 이끄는 범죄조직에게 납치되어 강력한 합성 약물의 운반책이 된다. 다른 운반책들과 함께 범죄조직의 목적지로 끌려가던 루시는 갑작스러운 외부 충격을 받고, 이때 몸 속 약 주머니가 터지며 약물이 몸 전체에 퍼진다. 약물에 노출된 루시는 누구도 사용한 적 없던 뇌 기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되고, 초인적인 힘을 얻는다.
‘루시’는 루시의 초능력이라고 봐도 무방한 능력을 갖게 된 여성의 SF영화다. 루시는 더 높은 차원에 돌입하기 위해 박사에게 도움을 청하고, 뇌 기능 100% 가까이를 사용할 수 있게 된 루시를 당해낼 자는 아무도 없다. 뤽 베송은 루시라는 여성 캐릭터를 통해 전 인류를 대변한다. 루시는 유일한 존재인 동시에 그 누구도 될 수 있다. 진정으로 강렬한 인간상이다.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존재가 된 루시에게는 필연적인 고독이 따른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으레 느낄 다양한 감정과 공감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루시’는 여느 인간이 단 한 번도 상상해내지 못한 영역에 도달한 루시에 비추어 인간의 근원을 묻는다. 그렇게 뤽 베송 감독은 미스터 장으로 인해 평범한 삶을 상실한 루시의 복수담이 아니라 인간의 지성과 한계에 질문을 던지는 ‘루시’를 완성했다.
영화 ‘안나’ 포스터 사진=사진=판씨네마
◇ 살아남기 위해 전사가 된 ‘안나’ 뤽 베송 감독이 2017년 영화 ‘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 이후 2년 만에 ‘안나’로 국내 영화 팬들을 만난다.
지난 28일 개봉한 ‘안나’는 파리의 톱모델로 위장한 강력한 킬러 안나(사샤 루스 분)가 살아남기 위해 모든 위협을 제거해나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사샤 루스를 비롯해 킬리언 머피, 루크 에반스, 헬렌 미렌, 레라 아보바 등이 출연한다.
뤽 베송 감독은 ‘안나’에서도 전작들에 이어 강력한 여성 캐릭터부터 반전이 담긴 서사로 러닝타임을 꽉 채운다. 액션 장르가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시대에도 시종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웠듯 ‘안나’는 그의 초기작들처럼 압도적인 감각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sunset@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