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필리핀이 이제는 캄보디아에도 밀린다?
바다 건너 동남아시아에선 현재 2023 캄보디아 프놈펜 동남아시안게임이 열리고 있다. 대회 막바지에 접어든 지금 농구 역시 금메달이 걸린 결승전만을 남겨두고 있다.
필리핀은 아시아 농구의 강호이자 동남아시아의 ‘미국’이다. 동남아시안게임에선 총 18번의 우승을 차지했고 단 3번만 정상에 서지 못했다. 압도적이라는 표현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없다.
그러나 지난 2022년 5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대회에선 인도네시아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81-85로 패하며 14연패 도전에 실패했다. 당시 필리핀은 큰 충격에 빠졌고 올해 대회에 앞서 ‘리딤팀’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결의를 보였다.
필리핀은 이번 대회에 PBA(필리핀프로농구) 선수들을 소집, 정상 탈환에 나섰다. 최근 귀화한 PBA 역대 최고의 외국선수 저스틴 브라운리를 중심으로 크리스티안 스탠드하딩거, 크리스 뉴섬, 제이마르 페레즈 등이 주축을 이룬 1.5군 전력. 전주 KCC 영입설이 있었던 제롬 라스티모사 역시 현재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있다.
첫 경기였던 말레이시아전을 94-49로 승리한 필리핀은 곧바로 이어진 캄보디아전에서 68-79로 완패했다. 이후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를 연달아 잡아내며 전 대회 결승 진출 기록을 이어갔으나 캄보디아전 패배는 1년 전 준우승의 충격만큼 크게 다가왔다.
매니 판기리난 SBP(필리핀농구협회) 명예회장조차 개인 SNS를 통해 “불명예스러운 경기, 패배”라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로 실망감을 드러냈다.
이상한 점이 있다. 필리핀은 동남아시아를 넘어 아시아 전체로 보더라도 분명 강팀이다. 해외파를 포함하지 않아 최정예 전력이 아니라고 해도 1년 전 동남아시안게임에서 100-32로 승리한 캄보디아에 완패했다는 건 대단히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캄보디아의 전력을 살펴보면 필리핀이 패한 것이 크게 이상한 일도 아니다. 현재 캄보디아에는 미국에서 귀화한 선수들과 캄보디아계 미국 선수들이 포함되어 있다. 사예드 프리짓, 대린 도시, 브랜든 피터슨, 오스카 로페즈 주니어, 드웨인 모건, 다리우스 헨더슨 등 NCAA 디비전Ⅰ, 유럽 리그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 개최국을 대표하고 있다.
대회 전부터 국제농구연맹(FIBA) 규정과 상관없이 시민권만 보유하고 있다면 귀화 선수의 출전 인원 제한을 두지 않기로 한 만큼 캄보디아 아닌 ‘캄보디아’의 귀화 러시는 큰 문제가 없다. 덕분에 캄보디아는 프리짓과 도시, 피터슨을 앞세워 3x3 결승에서 필리핀을 20-15로 꺾고 역사상 첫 동남아시안게임 농구 금메달을 획득했다(물론 다수의 귀화선수가 출전하는 만큼 이에 대한 문제 제기, 규정 변화에 대한 이야기는 언급되고 있다).
필리핀 역시 크게 당황한 모습이다. 1년 전 준우승의 아쉬움을 지우려 했으나 캄보디아라는 생각하지 못한 적수를 만났다. 필리핀과 캄보디아는 16일(한국시간) 결승에서 재회한다. 필리핀은 통산 19번째 우승을 노리고 있고 캄보디아는 첫 결승 진출과 우승을 동시에 목표로 하고 있다.
필리핀 입장에선 사실상 미국과 같은 캄보디아를 꺾어야만 동남아시아 챔피언 타이틀을 회복할 수 있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들도 귀화 선수가 없는 건 아니지만 첫판에서 꺾인 기억은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필리핀은 과연 역사상 최초로 2연속 준우승이라는 수모를 겪게 될까. 아니면 캄보디아를 꺾고 다시 정상에 설 수 있을까.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역사가 된다.
[민준구 MK스포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