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내일은 없다. 또 주춤한다면 팀 내 자리가 없을 수도 있다. 엄상백(한화 이글스)의 이야기다.
그동안 주로 하위권에 머물렀던 한화는 올해 당당히 최종 2위를 마크했다. 아쉽게 정상 도전에는 실패했으나, 지난 2006년 이후 19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등 지속적 강팀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비쳤다.
투수진의 활약이 이런 한화 선전의 주된 원인이었다. 이제는 각각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토론토 블루제이스,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떠난 코디 폰세(17승 1패 평균자책점 1.89), 라이언 와이스(16승 5패 평균자책점 2.87)가 원투 펀치를 책임졌으며, 류현진(9승 7패 평균자책점 3.23), 문동주(11승 5패 평균자책점 4.02) 등 토종 선발진들도 힘을 냈다. 불펜진 또한 견고했다. 마무리 김서현(2승 4패 2홀드 33세이브 평균자책점 3.14)을 필두로 박상원(4승 3패 16홀드 평균자책점 4.19), 김범수(2승 1패 2세이브 6홀드 평균자책점 2.25) 등이 굳게 지켰다.
단 웃지 못한 선수도 있었다. 바로 엄상백이었다.
2015년 1차 지명으로 KT위즈의 부름을 받은 엄상백은 지난해까지 통산 305경기(764.1이닝)에서 45승 44패 3세이브 28홀드 평균자책점 4.82를 마크한 우완 잠수함 투수다. 2024시즌에는 29경기(156.2이닝)에 나서 13승 10패 평균자책점 4.88을 기록, 데뷔 후 한 시즌 개인 최다승 기록을 새로 썼다.
한화는 이런 엄상백과 지난해 11월 4년 최대 78억 원(계약금 34억 원, 연봉 총액 32억5000만 원, 옵션 11억5000만 원)의 조건에 자유계약(FA)을 체결했다. 보다 굳건한 선발진을 구축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엄상백은 한화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전반기 15경기(64이닝)에 출전했지만, 1승 6패 평균자책점 6.33에 머물렀다. 5월과 7월에는 2군으로 내려갔으며, 전반기 막판에는 황준서에게 선발 자리를 내줬다.
불펜에서도 엄상백은 이렇다 할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8월 9일 잠실 LG 트윈스전에서는 다시 한 번 선발 기회를 부여 받았지만, 1이닝 5피안타 1피홈런 3사사구 1탈삼진 6실점으로 또 무너졌고, 결국 이튿날이던 8월 10일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다행히 정규리그 마무리는 나쁘지 않았다. 9월 9경기(10.1이닝)에서 불펜으로 나서 1승 1홀드 평균자책점 0.87로 잘 던졌다. 그렇게 올해 엄상백의 성적표는 28경기(80.2이닝) 출격에 2승 7패 1홀드 평균자책점 6.58로 남았다.
하지만 가을야구에서 다시 주춤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한화가 1-5로 끌려가던 9회초 1사 후 마운드에 올랐지만, 이재현에게 볼넷을 범했다. 이후 김태훈은 삼진으로 요리했으나, 강민호에게 비거리 105m의 좌월 2점포를 맞고 고개를 숙였다. 류지혁을 삼진으로 잡아내며 이날 성적은 0.2이닝 1피안타 1피홈런 1사사구 2탈삼진 2실점으로 남았다. 이후 엄상백은 플레이오프 3~5차전에 결장했으며,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한화는 이번 스토브리그 기간 투수진 전력을 유지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폰세, 와이스를 떠나보냈지만, 윌켈 에르난데스, 오웬 화이트를 품에 안으며 원투 펀치를 새로 꾸렸다. 뿐만 아니라 아시아쿼터로 한화 유니폼을 입은 왕옌청(대만) 또한 경쟁력 있는 투수라는 평가다.
여기에 국내 투수들의 성장세도 가파르다. 올해 데뷔 시즌임에도 3승 3홀드 평균자책점 2.85를 적어낸 정우주는 국가대표팀 경험을 통해 부쩍 크고 있으며, 황준서 역시 잠재력을 폭발시킬 경우 선발이나 불펜 어디에서나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자원이다. 2026시즌 초반에도 흔들릴 경우 엄상백의 팀 내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 밖에 없다. 과연 엄상백은 내년 2025시즌의 아픔을 털어내고 반등할 수 있을까.
[이한주 MK스포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