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에서 세 번째 시즌을 마친 ‘바람의 손자’, 그는 마음가짐을 바로 잡겠다고 다짐했다.
이정후의 시즌이 끝났다. 지난 주말 LA다저스와 원정경기 도중 자신이 때린 파울 타구에 다리를 맞은 뒤 부상자 명단에 오르면서 시즌이 끝났다.
선수는 시즌을 이어갈 의지를 보였지만, 구단에서 이를 만류했다. 구단 운영진은 그에게 ‘마지막 6경기를 뛰지 않는다고 해서 누구도 뭐라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선수를 달랜 것으로 알려졌다.
구단 운영진의 말처럼, 이정후의 2026시즌은 ‘누구도 뭐라 하지 않을’ 시즌이었다. 시즌 막판 슬럼프가 아쉬웠지만, 143경기에서 타율 0.276 출루율 0.320 장타율 0.404 10홈런 57타점 12도루, 2루타 31개 기록했다. 크게 보면 준수한 활약이었다.
성과도 있었다. 18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며 한국인 빅리거 최다 연속 안타 기록을 경신했다. 중간에 한 차례 부상자 명단에 오르며 이탈했지만, 주전 야수중에는 가장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켰다. 2년 연속 2루타 30개 기록했고 팀 내 유일하게 두 자릿수 홈런과 두 자릿수 도루를 기록했다.
자랑할 만한 성과가 많았지만, 이정후는 자신에게 관대하지 못한 모습이다. 그는 지난 23일(한국시간) 가진 인터뷰에서 ‘이번 시즌 가장 자랑할 만한 성과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런 걸 잘 모르겠다. 내가 이런 것을 잘하지 못하는 거 같다”고 답했다.
“좋았던 순간도 있고, 안 좋았던 순간도 있었다”며 말문을 연 그는 “그래도 큰 부상 없이 마무리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좋았을 때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그거를 최대한 오래 끌고 가고 싶었는데 내 성숙하지 못한 멘탈로 중간에 많이 내려왔었다”며 한 해를 돌아봤다.
그러면서 “비시즌 기간 기술적인 준비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고, 외적으로 안 했던 것들을 시작해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며 멘탈적인 면에서 단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에게 조금 더 설명을 부탁했다.
“한국에 있을 때는 한두 경기 안타가 안 나와도 ‘앞으로 열 경기, 열다섯 경기에서 치면 되지’라는 마인드가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한두 경기 못 치면 ‘쳐야 하는데’ ‘못 치면 어쩌지?’ ‘부진이 길어지면 어떻게 하지?’같은 부정적인 생각이 자꾸 들더라. 그런 부정적인 생각들이 현실로 옮겨지고 이것이 마치 쳇바퀴 돌듯이 계속 안 좋은 생각들이 돌고 도니까 자신감도 떨어지고, 자신감이 떨어지니 좋은 스윙도 나오지 못하고, 그렇게 악영향이 미쳤던 거 같다.”
이러한 불안한 생각들은 성적이 잘 나올 때도 그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좋았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했던 거 같다. 좋았을 때 ‘오늘 정말 잘했어’ ‘좋은 스윙을 했어’ 이렇게 조금 더 나 자신을 칭찬해주고 자신을 사랑하는 법도 배워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잘하고 있을 때도 ‘아니, 넌 더 잘해야 해’ ‘이것보다 더 잘해야 해’ 이런 방식이었다.”
“계속해서 나를 가스라이팅했다”며 말을 이은 그는 “잘할 때도 불안했다. 자신에게 잘했다 칭찬도 해주며 ‘내일도 잘해보자’ 이래야 했는데 ‘내일도 잘해야 해’ 이런 생각이 들면서 잘할 때도 불안했다”며 멘탈적으로 흔들렸던 순간들을 되새겼다.
이러한 문제들의 원인을 묻자 그는 “잘 모르겠다. 성장 과정에서 유래한 것일 수도 있다. 잘할 때는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자신에게 보상도 해주면 잘할 때 그 느낌을 토대로 자신감을 갖고 치고 나갈 수 있었을 텐데 잘할 때도 ‘더 잘해야 한다’며 자신을 질책하고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심해졌다. 그러다 보니 잘할 때도 불안해졌는데 그런 것을 없애야 할 거 같다”고 답했다.
다가오는 오프시즌은 멘탈을 가다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일단은 복잡한 마음을 비울 필요가 있다. 이정후는 시즌이 끝난 뒤 바로 귀국하지 않고 잠시 미국에 머물며 머리를 비우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이번 오프시즌은 예년보다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 메이저리그 노사가 현재 단체 공동 교섭에서 진통을 거듭하고 있는데 이대로라면 12월 1일부터 직장폐쇄에 돌입할 가능성이 크다. 2027시즌 개막도 늦어질 거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이정후는 “다 똑같은 조건이니 그 시간이 내게 좋은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잘 준비할 것”이라며 오프시즌에 대해 말했다.
지난 2022시즌의 경험을 돌이켜 보면, 기약 없이 시즌 개막을 기다리다 갑자기 시즌 준비에 돌입할 가능성도 있다. 변수가 많다.
이정후는 이런 상황에 대해서도 “코로나19 팬데믹 때 한 번 경험해봤다. 그때도 갑자기 5월 개막을 통보받고 시즌 준비를 했었다”며 경험이 있어 괜찮다고 말했다. “항상 시즌 준비했던 루틴 대로 할 거 같다. 그러다가 통보가 오면 그때 맞춰서 하면 되는 것이기에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직장폐쇄 기간 구단 시설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은 걱정이다. 그는 “야구 선수가 혼자 훈련하는 것은 제약이 많다. 운동장을 혼자 빌릴 수도 없고, 도와주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팀 훈련이 필요할 때도 있다. (공백이 길어지면) 다각도로 많이 생각해 봐야 할 거 같다. 같이 연습할 수 있게 다른 팀들에게 부탁한다던가 아니면 학교 팀들에 부탁하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할 거 같다”며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미국)= 김재호 MK스포츠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