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거룡이 별세한 원로배우 고(故) 김지미를 떠올리며 먹먹한 심경을 전했다.
거룡은 10일 MK스포츠와 통화에서 “너무 큰 별을 떠나보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거룡은 1977년 ‘이소룡 후계자 찾기’ 행사에서 발탁돼 김시현 감독의 영화 ‘최후의 정무문’으로 데뷔한 액션 스타로, 제33대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을 지낸 원로 영화인이기도 하다.
그는 “촬영 때 공교롭게도 옆 세트장에서 김지미 선생님과 함께한 적이 있다. 나는 액션을, 선생님은 멜로를 찍었는데 장시간 대화를 많이 나눴다”며 “연기에 대한 얘기도 하고, 서로 힘든 일이 있으면 길동무 해주자는 마음으로 버티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열악한 제작 환경 속에서도 그는 김지미와 나눈 대화를 생생히 기억했다. “선생님이 ‘내 인생은 왜 이렇게 굴곡이 많을까,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라는 얘기를 가끔 하셨다. 지금 생각하니 그 말이 가슴에 너무 남는다. 오늘 그 말이 더 뭉클하게 퍼진다.”
거룡은 마지막으로 “김지미 선생님은 한국 영화사에서 가장 빛나던 분이었다.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 좋은 곳에서 천사 같은 연기 마음껏 펼치시길 바란다”며 고인을 떠나보냈다.
김지미는 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데뷔해 ‘별아 내 가슴에’, ‘토지’, ‘길소뜸’, ‘티켓’까지 약 700편의 작품을 남긴 한국영화의 절대적 아이콘이었다. 그럼에도 생전 마지막이 된 인터뷰365 인터뷰에서는 뜻밖의 소박함과 담담함을 보여줬다.
그는 “내 인생은 늘 떳떳했다. 흠이라면 결혼을 여러 번 한 것뿐”이라며 “누구에게도 피해 준 적 없는 삶이라 부끄럽지 않다”고 말했다.
화려한 배우의 삶보다 오히려 미국에서의 조용한 일상, 손주들과 지내는 평범한 시간이 더 행복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제야 내 인생을 내 맘대로 산다. 배우였던 흔적도 집에서 지웠다. 가족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하고 싶다.”
배우로서의 자존심 또한 끝까지 지켰다. 상점에서 사진을 요청해도 “상업용으로 벽에 붙일 얼굴이 아니다”며 단호히 거절했고, 회고록 제안에도 “살아 있는 사람이 많아 쓸 수 없다”며 웃어 넘겼다.
김지미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10일, 충무로는 깊은 애도에 빠졌다. 한국영화인협회 등 영화계는 충무로 상징 공간에 별도의 추모 공간을 마련해 조용히 고인을 기릴 예정이다.
[김승혜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