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조립식 가족’ 속 산하가 진정한 행복을 찾았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김산하’라는 캐릭터를 떠올릴 때 가족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번 되짚어 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거 같아요.”
10년은 가족으로 함께 했고, 10년은 남남으로 그리워했던 세 청춘이 다시 만나 펼쳐지는 과정의 이야기를 다뤘던 JTBC 드라마 ‘조립식 가족’에서 ‘김산하’는 겉보기에는 아쉬울 게 하나 없어 보이지만 어릴 적 불행이 긁고 지나간 상처에 혼자서 외로워하고 괴로워했던 인물이다. 어린 시절 남매처럼 자라온 윤주원(정채연 분)과 강해준(배현성 분)을 훌쩍 떠나, 다시 이들 앞에 다타나기까지 10년 이라는 시간이 걸릴 정도로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가 깊기도 하다.
“산하가 10년 만에 내려온 걸 ‘구멍난 호스’를 생각하면서 연기했어요. 호스에 구멍이 날 때 테이프를 이용해 이를 임시로 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건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잖아요. 산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어요. ‘이러면 좋아지겠지’하는 희망을 품고 살아왔는데 상황은 여전하고, 구멍난 곳에서는 계속 물이 새어나가고, 그렇기 때문에 계속 불행하다 느낀거죠. ‘왜 10년씩이나 못 왔지?’에 대한 질문에 내린 답은 그것이 산하의 마음의 거리다였어요. 미국도 아니고 서울인데도 못 왔던 이유는, 미국에서의 거리만큼 서울에서 해동의 거리가 동일했다고 생각한 거죠. 갈 수 없다고 생각했겠구나. 산하의 마음는 어느 깊이까지 내려갔을까, ‘깊이를 표현’하는 것에 대한 것이 대본에 쓰이지 않았으니, 뭘로 채워야 하나 많이 고민했어요.”
이를 표현하기 위해 황인엽이 선택한 방법은 ‘눈빛’이었다. “기존에 보여드렸던 색깔보다는 눈으로 말을 하는 느낌으로 연기했다”고 말한 황인엽은 눈을 통해 말 보다 더 강한 마음의 전달을 느낄 수 있었음을 고백했다. 그만큼 쉽지 않은 인물이었지만 덕분에 황인엽은 더욱 깊어졌고, ‘조립식가족’를 보는 재미는 더욱 풍부해져 나갔다.
‘조립식 가족’은 중국드라마 ‘이가인지명’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다. 원작 드라마를 봤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황인엽은 “제가 원작 드라마에서 참고한 건 셋이 얼마나 친한지, 케미를 중점으로 봤다”고 말을 이어갔다.
“많은 사람이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 하면서 봤어요. 그리고 셋의 관계성도 중요하고, 아버지 둘의 관계성도 중요하다는 걸 알았죠. 일단 저희 셋이서 보여줄 수 있는 케미가 무엇일지, 다른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면서 작업했고, 덕분에 원작 마큼 좋은 케미가 나왔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 저와 (정)채연이, (배)현성이의 케미는 감히 최고였다고 자신할 수 있을 만큼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웃음)”
정채연과 배현성, 그리고 본인까지 모두가 F였기에 지적보다는 공감을, 조언보다는 위로가 있었기에 더욱 잘 통했고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고 황인엽은 이야기했다. 나중에는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만 보면 서로의 컨디션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고. 다만 너무 케미가 좋은데다 ‘로맨스 드라마’ 장르까지 더해지다 보니 웃지 못할 해프닝도 발생했다. 황인엽과 정채연 사이 열애 의혹이 암암리에 돌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대해 황인엽은 “채연이와 이렇게 ‘우리 사이에 열애설이 돌 만큼 그랬나’ 라는 말을 했다. 정작 저희는 가족 모먼트였는데”라고 웃었다.
“우리는 정말 ‘가족 모먼트’였어요. 따로 자주 만나기도 했지만, 저희 둘만 만났던 게 아닌 거기에 현성이도 있었거든요. 셋이 다녔는데, 어떤 부분에서 열애 의혹이 생겼는지 신기하고 재밌었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과몰입을 막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하하. 그게 드라마를 보시는 재미가 있잖아요. 어떤 의미로는 좋은 케미로 봐 주시는 거기에 ‘우리가 절을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이야기도 채연이랑 했죠. 근데 그게 아니더라도 저희는 정말 셋이 잘 지냅니다.”
황인엽은 정채연과 가족을 넘어 설레는 모먼트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서로의 케미도 있지만, 현장의 도움도 컸다고 말했다.
“산하와 주원이 사랑을 시작하는 단계까지 가기까지, 물론 시청자분들도 그러셨겠지만, 드라마를 만들던 이들 역시 모두가 염원했던 장면이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모두가 저희 둘을 둘을 몽글몽글하게 바라봐 주시더라고요. 저희가 설렐 수 있었던 이유는 모두가 한마음으로 봐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사랑을 고백하고, 입이 닿는 순간을 응원하듯 봐주셔서 덕분에 더욱 이입할 수 있었어요.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있으면 모두의 온도가 오르더라고요.”
‘조립식가족’은 원작을 따라가면서도 조금 달라진 부분도 있다. 원작 드라마 속 산하(링샤오)의 직업이 치과의사였다면, 정작 산하의 직업은 정형외과 의사였다는 점이다. 이 같은 설정 변경에는 주원을 향한 산하의 배려와 사랑이 있었다.
“원작에서 리젠젠(주원)은 치과를 가는 것을 무서워 하는 설정이 있어요. 그래서 링샤오가 좋은 치과의사가 되잖아요. 링샤오와 전공은 다르지만, 근본은 같아요. 산하가 정형외과 의사가 된 이유는 바로 주원 때문이거든요. 주원이가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죽도 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손목을 많이 쓸 수밖에 없잖아요. 주원이의 관절을 위해 산하는 정형외과 의사가 된 거예요. (웃음) 그래서 산하는 주원이의 손목만 봐도 아픈 걸 느끼고 치료를 해죠. 저는 일단 그렇게 생각하고 접근했다고 생각합니다.”
드라마에서 제시하는 가족상은 다양했지만, 결국 ‘혈연보다 중요한 건 같이 지낸 시간’이라는 메시지로 깊은 공감과 감동을 안겨주며 안방극장의 사랑을 받았다. 황인엽 역시 ‘조립식 가족’을 통해 가족이라는 것이 꼭 피를 나눠서가 아닌, 함께 지내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내 편이 돼 주고, 어떤 상황에서도 누가 말하는 것도 필요 없이 ‘당신의 편’이라는 무조건 적인 사랑이 서로가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감동도 있었지만, 분노의 순간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산하의 엄마 권정희(김혜은 분)의 “슬슬 용서해 주려고 한다”는 발언이 가장 대표적이다. 딸의 죽음을 끝까지 아들 탓을 하면서 정서적인 학대를 자행해 온 것은 물론이고, 그에 대한 반성은커녕 감히 ‘용서’라는 단어를 내뱉은 권정희는 이른 바 ‘막장 엄마’ 그 자체였다.
“어쨌든 엄마는 누군가를 탓해야 할 대상이 필요했던 거였다고 생각했어요. 무언가의 탓을 하고 싶을 때가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못 견딜 거 같아서 그러지 않았을까도 생각해 봤어요. 사실 그러지 않으면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잖아요. 사실 이해하기 보다는 ‘그렇게 해서라도 엄마가 숨이라도 쉬어질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라’는 산하의 마음에 이입하고자 했어요. 그와는 별개로 ‘김혜은 선배님 진짜 러블리한 사람인데’ 하면서 연기했어요.”
김혜은과는 넷플릭스 ‘안나라수마나라’ 이후 두 번째 만남이다. 공교롭게도 전작도 이번에도 두 모자 사이는 매끄럽지 못하다.
“이번에는 엄마와 얼굴을 붉히고 상처를 줘야 하는 연기를 해야 하는데, 실제 김혜은 선배님은 정말 러블리하세요. 중요한 순간을 연기하기에 앞서 집으로 초대해 주신적이 있어요. 맛있는 것을 같이 나눠 먹으면서 대본 분석도 하고, 작품에 대한이야기도 많이 나눴죠. 전화도 많이 해주셨어요. 아무래도 극 중 엄마가 상처를 주는 대사를 많이 하잖아요. 그러다보니 신경이 많이 쓰이셨던 것 같더라고요. 한번은 이런 말도 해주셨어요. 다음 작품은 뭔가 웃으면서 만나는 걸로 했으면 좋겠다고, 우리는 이렇게 사이가 좋은데. 만약 세 번째 모자로 만나게 된다면 사이좋은, 친구 같은 모자로 만나고 싶어요. (웃음)”
산하의 두 아버지 김대욱(최무성 분)과 윤정재(최원영 분)와의 케미도 빼놓을 수 없다. 실제로 두 배우와 사이가 좋았다고 고백한 황인엽은 “선배님들 성격이 저희에게 다그치시거나 조언하시거나 어떠한 표현이 없이 기다려 주셨다”고 밝혔다.
“연기를 하는 내내 선배님들께서 ‘너희들이 하는 것이 산하, 주원, 해준이 그 자체니 마음 편하게 했으면 좋겠다’며 많이 놓아주셨어요. 술자리를 통해 이야기도 많이 해주시고, 그런 순간들이 많았죠. 드라마 촬영이 끝나고 같이 연극도 보러 다니고 했습니다.”
부모 배우들과 최고의 케미를 보냈다고 말한 황인엽. 실제 가족은 어떠할까. 이에 대해 황인엽은 “저희 부모님이 최원형 선배님과 최무성 선배님과 비슷하다. 너무 이상적이지 않느냐”고 화기애애한 가족 분위기에 대해 이야기 했다.
“저희 부모님은 제가 ‘저 조금 힘든 데 집에 와주세요’고 하면 모든 걸 스톱하시고 저에게 달려와주세요.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조언도 많이 해주시죠.. 부모님과 굉장히 가깝게 지내요. 친구같은 사이라고 할까요. 제가 부모님께 표현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기도 해요.”
황인엽은 부모님과 사이만 가까운 것이 아니었다. 황인엽은 동생이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같은 침대에서 같이 잘 정도로 무척이나 친하고 가까웠다고 고백하며 ‘현실 형제’와는 조금은 다른 매우 친하고 각별한 형제 사이를 자랑했다.
“사실 일반적인 형제 스타일은 저는 모르겠지만 저희는 서로를 향한 존중과 배려가 있어요. 카톡으로 위로하는 글도 많이 쓰고, 사랑한다고 말도 많이 하죠. 실제 편지도 많이 써요. 동생이 어릴 때부터 유난히 저를 따라줬어요. 동생을 때린적이 있냐고요? 아뇨. 전혀 없어요. 저를 좋아해주는 동생을 어떻게 때리나요. 부모님이 저를 사랑해주시는 것처럼 저도 동생을 사랑해줬어요. 지금은 저의 모든 걸 알고 있는 가족이자 친구자 동생이에요. 제가 너무 울고 싶을 때 동생을 불러요. 그럼 고맙게도 또 모든 걸 스톱하고 저에게 달려와주죠. 사실 저희는 어렸을 때부터 스무살까지 같은 침대에서 잤어요. 그때는 그게 당연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더라고요.(웃음) 동생이 성인이 될 때까지 같은 침대에서 잤어요. 지금도 침대가 하나인데, 동생이 저희 집에 놀러오면 같이 자요. 다른 침대를 쓴 이유요? 동생이 동생이 성인이 되고 운동을 하니 침대가 좁아지더라고요. 그래서 말했죠. 이제 슬슬 따로 자는 것이 낫겠다고, 하하. 저희가 친할 수 있는 건 부모님 영향도 큰 거 같아요. 아버지가 집에 오시면 다 같이 나가서 포옹하거든요. 저희는 안는 것이 원칙이에요. 덕분에 저희 네 식구는 정말 잘 뭉칩니다.”
‘조립식 가족’과 그 안에 있던 김산하라는 인물은 황인엽에게 어떤 캐릭터로 남을까.
“저는 산하가 진정한 행복을 찾은 아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진정한 행복’을 찾은 산하를 통해 사람들이 가족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번 되짚을 수 있게 되면 더 바랄 게 없을 거 같아요. 저 아이도 극복했는데, 우리도 사랑을 표현해 보자가 되기를 바라죠. 위로가 됐으면 좋겠어요. 요즘 위로가 귀한 시대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슬픈 장면을 연기할 때부다 위로 해주는 장면을 연기할 때 눈물이 많이 나와서 NG가 많이 났어요. 이럴 게 아닌데 왜 눈물이 나는지 이해가 안 될 때도 있었죠. 가장 많은 눈물을 쏟아냈던 대사가 ‘그게 왜 너야’였던 거 같아요. 많은 위로가 담긴 다섯 글자에 많은 위로를 받고 많은 눈물이 났던거 같아요. 산하가 누군가를 통해 위로를 받고 구원이 됐던 것처럼, 그 역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인물로 남기를 바라요.”
황인엽은 지금까지 달려온 길보다 앞으로 달려나갈 길이 더 많이 남았다. 앞으로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있냐는 질문에 황인엽은 “항상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 저의 책임이고 도전 의식이 있다”고 말했다.
“다음에는 아주 다크하고 퇴폐적이기도 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웃음) 그래서 몸도 만들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죠. 차기작에서는 지금까지 제가 보여주었던 모습과는 정 반대의 것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금빛나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