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하나시티즌 황선홍 감독은 축구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다. 평생을 축구계에 몸담고 있지만 “지금도 축구가 아주 좋다”고 한다.
황 감독은 빡빡한 일정 속 쉬는 시간이 주어지면 유럽 축구 중계를 챙겨보곤 한다. 어떤 사람을 만나든 대화의 주제 역시 축구다.
“나는 축구가 아주 재밌다. 뜻대로 안 되니까 문제지.” 황 감독이 활짝 웃으며 남긴 첫마디였다. MK스포츠가 2024년 12월 27일 대전클럽하우스에서 황 감독과 나눈 이야기다.
Q. 2024시즌 마치고 휴식기엔 좀 쉬었습니까.
참 오랜만에 쉬었습니다(웃음).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제대로 쉰 적이 없었거든요. 1년 6개월 동안 세 팀을 맡았으니까. 정신이 없었지. 10일 정도 쉰 거 같아요. 이후엔 구단과 논의하면서 2025시즌 준비에 매진했죠.
Q. 10일 쉬고 바로 업무를 보고 있는 겁니까.
프로축구 감독들은 다 비슷할 겁니다. 다음 시즌 준비해야죠. 선수 구성을 잘 해놔야 하는 시기니까. 기존 선수들과 새로운 선수들을 새 시즌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매번 똑같은 축구를 할 순 없으니까. 2025시즌 준비는 고민과 논의로 시작한 듯합니다.
Q. 힘들진 않습니까.
재밌어요. 스트레스가 없는 건 아니지만 여전히 축구가 참 재밌는 것 같습니다. 많은 분이 잘 아시겠지만 K리그가 옛날 같지 않거든요. 누구든 우승에 도전할 수 있고, 누구든 강등될 수 있는 리그입니다. 정말 치열해졌어요. 거스 포옛 감독도 K리그에 왔잖습니까. 이정효 감독은 광주 FC에 남았고요. K리그가 2025시즌엔 더 재밌지 않을까 싶습니다.
Q. 지금도 축구가 재밌습니까.
재밌죠. 이만한 친구가 있을까 싶어요. 뜻대로 안 풀리니 문제지(웃음). 잘하고 싶은 마음은 항상 굴뚝같아요. 팬들에게 항상 재미난 축구를 보여드릴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겁니다.
Q. 황선홍은 선수, 지도자로 큰 성공을 일군 몇 안 되는 축구인입니다. 황선홍은 한국의 역대 최고 스트라이커로 꼽히는데요. 지도자로는 K리그1과 코리아컵에서 각각 2회씩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선 한국의 3연속 금메달 획득을 이끌었고요. 축구가 계속해서 재밌다는 건 동기부여가 명확하다는 것 아닙니까. 황선홍의 가장 큰 동기부여는 무엇입니까.
못해본 걸 해봐야죠. 저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우승을 꿈꿉니다. 포항 스틸러스에서 ‘더블’을 일궜을 때부터 클럽에서의 꿈은 ACL이었어요. FC 서울에서도 마찬가지였죠. 포항과 서울에서 리그, 코리아컵을 두 번씩 우승했습니다. 준우승도 경험해 봤죠. ACL에선 4강 진출이 최고 성적입니다. ACL 우승이란 꿈은 항상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아요.
Q. 황선홍 감독의 선수 시절 ACL은 지금과 같은 위상이 아니지 않았습니까.
이름이 달랐죠. 제가 선수로 뛸 때도 아시아 챔피언을 가리는 대회가 있었어요.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이란 이름이었죠. 선수 땐 두 번(1997, 1998) 우승했던 기억이 납니다. 포항에서 뛸 때 2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어요. 제가 부산 아이파크 감독 생활을 마치고 포항을 선택했잖아요. K리그1, 코리아컵에 ACL까지 도전할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이었어요. 선수 시절 느꼈던 감정을 감독으로도 느끼고 싶었습니다.
Q. ACL만의 매력이 있습니까.
국가대표팀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각 리그를 대표하는 클럽 간의 대결이지만, 한 나라를 대표하는 팀들의 대결이기도 하잖아요. 리그에서 경기할 때와 또 다른 재미가 있습니다. K리그1에선 12개 팀이 한 시즌에 3~4번씩 맞붙잖아요.
ACL은 다릅니다. ACL은 우리의 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제일 흥미로운 건 서로를 잘 모르잖아요. 리그에서처럼 여러 번 맞붙어 본 상대가 아니니까. ACL은 리그에서와 다른 동기부여를 가지고서 도전할 수 있는 무대입니다. 대단히 흥미로운 것 같아요.
Q. 선수 영입 기간만 되면 대전을 부러워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옵니다. 여러 감독이 “황선홍 감독이 부럽다. 구단이 원하는 선수 다 사주지 않느냐”고 합니다.
저는 지도자 경험이 많습니다. 부산, 포항, 서울 등 다양한 팀을 거쳤죠. 모든 팀이 넉넉했던 건 아니에요. 팀 사정에 맞게 어떻게 한 해를 이끌어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제가 대전을 맡고 나서 그룹엔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다만 투자가 빠른 성공으로 이어지는 건 아닙니다. 대전은 승격 3년 차 시즌을 앞두고 있습니다. 우린 2024시즌 막판까지 생존 경쟁을 벌였어요. 돈으로 모든 걸 이룰 순 없습니다. 시간이 필요해요. K리그1에서 꾸준한 성적을 낼 수 있는 단단한 팀을 만들어야 합니다. 현재의 투자는 그 기반을 닦아주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제가 대전에서 영광의 순간을 누리는 건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단, 제가 초석을 잘 다져놓는다면 이후의 감독은 영광을 많이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은 영광의 순간을 만들어가는 단계입니다.
Q. 얼마를 투자하든 시간이 필요한 거군요.
어느 팀이든 똑같습니다. 맨체스터 시티도 막대한 투자를 시작하자마자 우승컵을 들어 올린 건 아니잖아요. 그 맨시티도 단단한 팀을 만드는 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과정을 거쳤어요. 우리 대전도 그 방향으로 나아갈 겁니다.
대전은 승격 첫 시즌 파이널 A에 진입할 수도 있었어요. 좋은 경기력으로 축구계 기대 이상의 성적을 냈습니다. 문제는 이후였어요. 단단한 팀이 되려면 꾸준해야 합니다. 정말 힘겹게 살아남았잖아요. K리그 역사를 보면 1년 반짝한 팀은 많습니다. 하지만, 매 시즌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팀은 드뭅니다. 매년 우승 경쟁을 벌이는 팀은 더 찾아보기 어렵고요.
제 목표는 명확해요. 매 시즌 ACL에 출전하고, K리그1에선 우승 경쟁을 벌이는 팀의 초석을 다지는 겁니다. 대전은 K리그1 중심에 있어야 해요. 무슨 일이 생겨도 일정한 성적을 유지할 힘을 키우겠습니다.
Q. 꾸준한 성적을 내는 팀이라고 하면 황선홍 감독이 선수, 지도자로 우승컵을 들어 올렸던 포항이 떠오르는데요. 포항은 2024시즌 코리아컵에서 또 하나의 우승컵을 추가했습니다. 포항이 투자를 많이 하는 팀은 아니잖아요. 포항이 ‘축구 명가’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비결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팀 문화입니다. 대전도 그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대전의 문화는 전임 이민성 감독께서 잘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저는 그 문화를 가다듬으면서 이어가고 있죠. 선수들에게 ‘우리만의 문화’를 강조합니다. ‘개인보다 팀을 우선하는 끈끈한 유대관계’가 중요한 것 같아요. 서로가 팀을 먼저 생각하는 문화말이죠.
대전은 매 시즌 선수단 변화가 큰 팀이잖아요. 제가 지난 시즌 대전 지휘봉을 잡은 이후엔 더 큰 변화가 있습니다. 팀 문화가 확실히 정착되면, 선수단 구성이 20% 가까이 바뀌어도 큰 문제가 없을 거예요. 대전만의 문화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Q. 황선홍 감독은 단단한 대전을 만드는 과정에 있습니다. 황선홍 감독이 선수를 볼 때 가장 중점적으로 보는 건 무엇입니까.
기술, 전술 이해도 등을 보죠. 그 가운데 제일 중요한 걸 꼽으라면 ‘성향’입니다. ‘축구를 대하는 태도’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제가 이렇게 말하면 옛날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축구를 대하는 태도나 자세가 아주 중요합니다. 특히나 어린 선수들 같은 경우 재능에 따라서 ‘반짝스타’가 될 순 있지만, ‘슈퍼스타’가 되는 건 정말 어렵거든요.
그만큼 축구를 대하는 자세가 한결같은 선수는 드물다는 겁니다. 축구를 늘 진심으로 대하는 선수들은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합니다. 지금도 잘 보세요. 나이를 먹어서도 변함없는 경쟁력을 보이는 선수들이 있습니다. 그런 선수들에겐 공통된 특징이 있죠. 그들의 삶은 몸 관리에 맞춰져 있다는 거예요. 훈련장에서부터 무엇 하나 허투루 하는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게 경기 날 최고의 경기력을 보이는 데 맞춰져 있어요. 그런 걸 어린 선수들이 배워야 합니다. 하나의 문화가 되어야 하고요.
Q. 대전에 축구에 진심인 대표적인 선수 있잖습니까. 이시다 마사토시.
축구에 정말 진심인 선수죠. 마사의 삶은 축구예요. 마사는 매 순간 헌신적입니다. 매 경기 자기가 가진 모든 걸 쏟아내죠. 대전이란 팀을 위해서 말입니다.
저는 대전의 젊은 선수들이 마사를 보고 배워야 한다고 봐요. 제가 마사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운동 좀 그만하라”는 거에요. 마사는 팬들에게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지가 큽니다. 자기만의 루틴이 확실하게 있어요. 마사는 팀 훈련 전 30분~1시간은 개인 운동에 투자하는 거로 압니다. 마사는 대전의 좋은 문화를 만들어가는 선수예요. 우리 팀에 이런 선수가 있다는 게 감사하죠.
Q. 마사 얘기가 나왔으니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지난 시즌 대전의 최다득점자가 마사(6골)였습니다. 마사는 2024시즌 여름 이적시장에서 대전으로 복귀했잖아요. 대전 지휘봉을 잡고 골 결정력 부재에 대한 고민이 컸을 듯합니다.
저도 기록을 보고 놀랐습니다. 대전이 해결해야 하는 과제죠. 유럽을 봐도 스트라이커가 많이 없습니다. 원톱, 타겟형 스트라이커의 개념이 많이 사라졌어요. 일본의 경우엔 작고 빠른 선수를 전방에 세워서 공격 속도를 높입니다. 세계 축구의 흐름이 타겟형 스트라이커는 활용하지 않는 추세로 가고 있지 않나 싶어요.
그러다 보니 능력 있는 스트라이커를 찾는 데 어려움이 있죠. 제가 선수로 뛸 땐 김도훈, 최용수, 이동국 등이 국가대표팀에서 경쟁을 벌였어요. 스트라이커 자원이 풍부했습니다. 그런데 이젠 스트라이커가 많이 없어요. 마땅한 자원이 없으면 전술적으로 타개해야죠.
Q. 전형적인 스트라이커 활용에 대한 계획이 있습니까.
있죠. 저는 타겟형 스트라이커가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축구는 볼 점유율이 상대보다 높다고 해서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니잖아요. 축구엔 변수가 많습니다. 여러 상황에 맞춰서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더 좋은 팀이 되려면 말이죠. 타겟형 스트라이커를 얼마나 쓰느냐는 둘째입니다. 일단 무조건 있어야 한다고 봐요.
Q. ‘선수’ 황선홍은 한국의 역대 최고 스트라이커로 꼽힙니다. 공격수를 지도할 때 ‘원 포인트 레슨’을 해주기도 합니까.
공격수들에게 ‘득점 확률’을 높이는 법을 알려주곤 합니다. 축구가 ‘이렇게 움직이면 반드시 기회가 온다’든지 수학처럼 공식이 있는 건 아니에요. 다만 ‘이와 같은 상황에선 이런 선택을 하는 게 득점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정도는 얘기해줄 수 있죠. 판단은 선수의 몫입니다. 득점은 배운다고 해서 100%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아니거든요.
되는 선수도 있고, 안 되는 선수도 있습니다. 지도자로서 제일 어려운 부분이 아닌가 싶어요. 저도 공격수들의 결정력을 높이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해야죠. 더 연구해야 하고요.
Q. 국가대표팀 주장 손흥민은 지난해 A매치 통산 51번째 득점을 터뜨렸습니다. 손흥민이 한국의 A매치 득점 역대 2위로 올라섰는데요. 손흥민의 결정력은 재능의 영역이 크다고 봅니까.
타고난 재능도 있겠죠. 있을 겁니다. 다만 손흥민은 축구를 대하는 태도가 아주 좋은 선수예요. 축구엔 늘 진심이죠. 손흥민의 하루는 더 좋은 경기력을 보이는 데만 집중합니다. 손흥민은 슈팅력이 아주 좋잖아요. 타고난 재능도 있겠지만, 어릴 때부터 훈련한 것들이 쌓이고 쌓인 결과물이라고 봅니다.
손흥민의 전매특허가 감아차기 슈팅이잖아요. 그걸 볼 때마다 ‘손흥민이 얼마나 연습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경기 중에 손흥민과 같은 슈팅을 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연습의 결과거든요. 어떤 상황에서든 몸이 먼저 반응하잖아요. 반복된 연습이 아니고선 손흥민처럼 꾸준한 결정력을 보이기 어려워요. 대단한 선수입니다.
Q. 2024년 황선홍 감독에겐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황선홍 감독에게 대단히 힘든 시간이 있었잖아요. 그 힘든 시기를 빨리 극복했습니다. 선수 시절 때도 그랬잖아요. 제아무리 힘든 시간이 있어도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것이 황선홍이었습니다. 힘든 시기를 이겨내는 황선홍 감독만의 비법도 있습니까.
축구로 상처받고 축구로 치유하는 거죠. 솔직히 자존심이 많이 상했어요. 결과적으로 더 잘해야 했죠. 다만 명확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U-23 대표팀 모든 코칭스태프가 온 힘을 다했다는 겁니다. 선수들도 모든 걸 쏟아냈어요. 모두가 올림픽 출전을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 거죠.
결과로 우리의 모든 노력이 인정받지 못한 건 아쉽습니다. 저를 믿고 따라준 코치진, 선수들에게 미안하죠. 제가 부족했던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이 아쉽다고 해서 ‘이것 좀 알아달라’고 할 순 없잖습니까. 아쉬운 순간을 되돌릴 수 없다면, 다시 한 번 증명하는 방법뿐인 것 같아요. 황선홍이란 사람의 삶이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빨리 이겨내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요.
그만큼 축구를 사랑하는 것 같아요. 선수 때부터 축구를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정말 큽니다. 이게 생각대로 안 되니까 문제지. 축구 참 어려워요(웃음).
Q. 올림픽 얘기 하나만 더 해볼게요.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잖아요. 아시안게임이 1년 연기됐던 까닭에 준비 시간 거의 없이 올림픽 예선을 치렀습니다. 많은 감독이 황선홍 감독이 겪었던 어려움에 공감했거든요. 황선홍 감독은 바뀌어야 하는 부분에 관해선 이야기했지만, 책임은 혼자서 짊어졌습니다. 그 부분에서 아쉬운 마음은 없었습니까.
전혀요. 제가 2008년부터 감독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팀에서든 결과에 대한 책임은 감독의 몫이에요. 제가 어려운 걸 모르고 올림픽에 도전한 것도 아니잖아요. 올림픽에 나서지 못한 건 온전히 제 잘못이죠. 감독이란 직업이 그래요. 준비 기간이나 선수 구성이 어쨌든 감독은 결과로 증명해야 합니다. 증명하지 못하면 책임을 져야죠. 비판받아야 하고요. 감독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어요.
Q. 스트레스 해소는 어떻게 합니까.
운동해요. 무릎이 좋지 않아서 오랜 시간은 못하지만, 많이 걷습니다(웃음). 바람 쐬면서 땀도 좀 내고요. 산책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게 스트레스 해소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음악 듣는 것도 좋아하고요.
Q. 올림픽 예선 이후 대전의 제안을 받았을 때의 감정은 어땠습니까.
여러 이야기가 나올 때 제안을 받았죠. 처음엔 소문으로 접했어요. 대전의 제안이 오기 전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고민했어요. 속으로 ‘진짜 대전의 제안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하지’란 생각을 했습니다. 팬들이나 언론이나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잖아요. 고민을 거듭했던 것 같습니다.
Q. 대전의 제안을 수락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누군가 제게 “대전의 초대 감독이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제가 대전이란 팀이 시민구단에서 기업구단으로 재창단했을 때 지휘봉을 잡았었잖아요. 대전은 제 고향 쪽 구단이기도 합니다. 그런 팀이 어려운 상황이었잖아요. 그걸 외면한다는 건 책임감이 없는 것으로 봤습니다. 일단 팀을 K리그1에 잔류시켜 놓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대전 감독 취임 기자회견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굉장히 어려운 시즌이 될 것’이란 걸 알고 시작했습니다. 마무리가 좋아서 다행이었지만, 힘든 시즌이었어요. 다만 대전이 강등될 것이란 생각은 한 번도 안 했습니다. 대전은 시간이 지나면 점점 나아질 것이란 확신이 있었어요.
대전은 이제 시작입니다. 2024시즌 K리그1에 잔류했다고 해서 2025시즌 더 좋은 성적을 낼 것이라고 확신할 순 없거든요. 앞서서도 말했지만 대전은 K리그1에서 경쟁력 있는 팀으로 자리 잡아야 합니다. 구단에서 투자를 많이 해주시잖아요. 더 좋은 팀 만들어 보라고 지원해 주시는 거거든요. K리그1 중심에서 꾸준히 경쟁할 수 있는 팀을 만들어가겠습니다.
Q. 대전 지휘봉을 처음 잡았을 땐 팀이 K리그2에 있었습니다. 대전을 이끌고 K리그1을 경험한 건 2024시즌이 처음이었는데요. 대전 감독으로 K리그1과 K리그2를 모두 경험했잖아요. 이 두 리그를 모두 경험한 감독 다수가 “K리그2가 더 어렵다”고 하거든요. 황선홍 감독은 어떻습니까.
공감합니다. K리그2는 예측 불가에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K리그1은 어느 정도 예측이 되거든요. 큰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70~80%는 예상이 돼요. 그런데 K리그2는 진짜 모르겠어요. 경기 준비를 아무리 잘해도 예상 못한 변수가 하나둘 생깁니다. K리그1에서의 변수는 경기 흐름을 서서히 바꿔요. K리그2에서의 변수는 경기 흐름을 한 번에 바꿔버립니다. 경기 당일 선수 컨디션에 따른 경기력 편차도 대단히 심한 것 같고요. K리그2, 정말 쉽지 않은 무대입니다.
Q. 2024시즌 K리그를 보면서 ‘감독의 경험’이란 게 대단히 중요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경험이 부족한 젊은 감독들이 고전했잖아요. 반대로 황선홍, 김학범 감독 등 경험이 풍부한 지도자는 중요한 순간 자기 능력을 확실하게 발휘했습니다. 그 경험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겁니까.
‘냉정함’인 것 같아요. 1경기에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않는 겁니다. 우리가 목적지까지 도달하기 위해선 준비해야 하는 게 한둘 아니에요. 감독이 1경기 결과에 따라서 흔들리면 우리의 계획에도 문제가 생깁니다. 감독이 중심을 잡고 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구성원들이 믿고 따르지 않겠습니까.
Q. 황선홍 감독이 2024시즌 대전으로 돌아왔을 때 팀 분위기가 정말 안 좋았어요. 경기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선수들이 ‘공을 두려워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빌드업이 잘 안 됐잖아요. 그랬던 대전 선수들이 후반부로 갈수록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강한 전방 압박으로 공을 빼앗아 연거푸 득점을 만들어냈어요. 파이널 라운드(B) 5경기에선 4승 1무 무패를 기록했습니다.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겁니까.
우여곡절(迂餘曲折)이 많았어요. 처음 팀을 맡았을 땐 포백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풀백이 없었어요. 공격 성향이 강한 윙어만 있었던 거죠. 부상자도 한둘 아니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훈련 시간이었어요. 무언가를 준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리그, 코리아컵 등이 연달아서 있었죠.
처음엔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다가 K리그1 최하위까지 떨어졌죠.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우린 확고한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기에 당시의 어려움은 극복할 것이라고 확신했어요. 선수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휴식기 동안 팀을 정비하고, 부상자가 하나둘 돌아오면서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죠. 여름 이적시장에서의 보강도 있었고요.
포백으로 변화를 꾀했습니다. 스트라이커가 없으니 다양한 선수들의 득점력을 끌어올릴 방안을 생각했고요. 우리가 뒤에서부터 공격을 전개하면, 득점력 강화에 한계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전방에서부터 강하게 몰아붙이는 게 득점력을 끌어올릴 방법이라고 봤어요.
Q. 효과가 상당했습니다.
효과가 있었죠. 선수들에게 ‘실점을 내주더라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어요. ‘수비가 조금 허술해지더라도 물러서지 말고 계속 몰아붙이라’고 주문했죠. 우리의 데이터를 살펴보면 중원에서의 활동량이 대단히 많습니다. 그 장점을 살릴 수 있는 것도 전방 압박이라고 봤죠. 대전 모든 구성원이 하나로 똘똘 뭉쳐서 일궈낸 성과가 아닌가 싶어요.
Q. 2024시즌 여름 이적시장에선 무려 11명을 영입했습니다. 시즌 중 선수 영입이 많다는 건 큰 변화를 예고하는 거잖아요. 실제로 여름을 지나면서 주세종과 같은 팀 핵심이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기도 했습니다. 변화가 크다 보면 팀 내부에서 불만이 터져 나올 수도 있는데요. 대전은 그런 문제 없이 모든 구성원이 하나로 뭉친 게 눈에 띄었습니다.
제가 가장 우려했던 부분 중 하나였습니다. (주)세종이, (오)재석이 등이 팀 중심을 잡아주는 고참이었습니다. 이 선수들의 경기 참여도가 떨어졌어요. 하지만, 우리 베테랑 선수들은 팀을 위해서 헌신했습니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중심을 잘 잡아줬어요.
저도 베테랑 선수들에게 속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했습니다.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고요. 돌아보면 정말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이었거든요. 선수 선발 등은 감독의 권한이니까. 힘들었어요. 베테랑 선수들에겐 진심으로 고맙고, 미안했습니다.
Q. 대전이 K리그1 최하위까지 내려앉았었잖아요. 반등의 계기가 된 경기가 있습니까.
7월 27일 대구 FC와의 홈경기를 마치고 난 뒤였을 거예요. 우리가 7경기째 승리가 없던 상태였죠. 선수들에게 얘기했습니다.
Q. 어떤 얘길 했습니까.
선수들에게 “우린 올여름 11명을 데리고 왔다. 하지만, 내가 데려온 선수라고 해서 베스트 11이란 보장은 없다. 철저하게 경기력만 보겠다. 경기력 위주로 선발 명단을 짤 것”이라고 했습니다. 선전포고(宣戰布告)였죠. 이후 8명 정도를 바꿨어요. 바로 다음 경기였던 8월 10일 수원 FC전에서 2-1로 이겼습니다. 8경기 만의 승리였죠.
흐름이 이때부터 조금씩 바뀌었던 것 같아요. 모든 선수가 ‘치열한 주전 경쟁에서 승리해야 경기에 나설 수 있다’는 걸 인식한 것 같았습니다. 경쟁 체제에 불이 붙었던 거죠.
Q. 올여름 큰 변화 속 2군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온 선수가 하나 있습니다. 이순민이거든요. 이순민은 무엇이 달라졌기에 팀 핵심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까.
처음 대전에 와선 주전으로 썼습니다. 세종이와 중원 파트너로 활용했죠. 저는 두 선수를 공존시키고자 큰 노력을 기울였어요. 그런데 기대한 만큼의 시너지가 나오질 않았습니다. 특히 순민이는 자기의 강점을 살리지 못했어요. 순민이에게 얘기했습니다. “네가 지금 네 장점과 반대되는 플레이를 하고 있다”고.
Q. 구체적으로 어떤 플레이었습니까.
예를 들어볼게요. 어떤 선수든지 한 경기에서 내보일 수 있는 능력치란 게 있어요. 그 능력치가 80이라면 80까지만 하면 돼요. 그런데 어떤 선수든 욕심이 있잖아요. 120을 하려고 하는 겁니다. 조금 더 쉽게 설명하면 다른 선수가 잘하는 것까지 하려다 보니 이도 저도 안 되는 상황이 오는 거예요. 순민이에게 명확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컨디션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준 거죠. 만약 순민이가 변화를 꾀하지 않았다면, 대전에서 계속해서 뛰기는 어려웠을 거예요.
Q. 이순민이 8월 10일 수원 FC전을 마친 뒤 9월 1일 광주전에서 복귀를 알렸습니다.
이순민이 돌아온 경기였죠. 중원에서 상대를 강하게 압박하고, 상대 공격을 차단해 내는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습니다. 경기 후 순민이에게 얘기했어요. “그래, 네 모습이 그거야. 그것만 하면 된다”고. 덧붙여서 “너무 욕심내지 마라. 너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만 살려도 팀에 엄청난 도움이 된다. 이렇게만 하면 경기에 못 나갈 이유가 없다”고 했죠.
그 뒤론 다들 아시다시피 밥신과 중원의 핵심으로 좋은 경기력을 이어갔습니다. 저는 선수 개개인의 색깔을 살려 나가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고 봐요. 국가대표팀 선수들의 특징이 그거잖아요. 자기만의 확실한 무기가 있는 것. 순민이에게도 얘기했습니다. “네가 너의 고유의 장점을 살려야 대표팀에서도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선수들 마음은 이해해요. 다 잘하고 싶은 마음. 하지만, 다 잘하려고 하면 기존의 장점까지 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색무취(無色無臭)가 되는 거죠.
Q. 많은 지도자가 “요즘 선수들 다 고만고만하게 잘한다. 자기만의 확실한 장점이 없다”고 합니다. 황선홍 감독도 동의합니까.
동의해요. 그런데 한국만 그런 건 아닙니다. 세계 축구의 흐름이 그래요. 지금은 한 선수에게 많은 걸 원합니다. 박지성과 같은 활동량에 이강인과 같은 패싱력, 손흥민과 같은 결정력을 바라요. 패스, 드리블, 슈팅 다 잘해야 하는 거죠. 사실 그런 선수는 거의 없거든요. 어느 정도 수준의 패싱력, 개인기, 슈팅력을 갖춘 거지.
감독으로선 한 가지를 확실하게 잘하는 선수가 다양한 걸 조금씩 잘하는 선수보다 좋습니다. 활용하기가 훨씬 편하거든요. 발이 아주 빠른 선수가 있으면, 그 장점을 확실하게 살려주면 돼요. 그런데 요즘 선수들 어떻습니까. 빠른 발이 강점인 선수가 공을 가지고서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하려고 해요. 그거 아니거든. 특출난 장점이 있는데 다른 것까지 잘하려고 하면 탈이 납니다. 고유의 캐릭터가 사라져요.
국가대표팀에 가고 싶다면, 확실한 장점을 살려야 합니다. 당장 베스트 11에 속하는 건 어려울 수 있죠. 하지만, 교체 카드가 5장으로 바뀌었잖아요. 교체 카드는 자기 색깔이 뚜렷한 선수를 우선합니다. 흐름을 바꾸려고 투입했는데 밋밋하면 다음번엔 기회를 잡기 어려울 거예요.
축구는 퍼즐과 비슷해요. 측면 공격수로 발 빠른 선수를 선발로 택했다면, 벤치에선 기술 좋은 선수를 준비시켜 놓아야 해요. 경기 흐름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까. 축구는 경기 흐름에 따라서 퍼즐처럼 잘 맞춰가야 합니다.
Q. 대전 최고의 기대주 윤도영에겐 따로 조언해 주는 게 있습니까.
(윤)도영이는 볼을 받아서 드리블하는 걸 좋아해요. 도영이에게 “네가 공을 받아서 움직이는 건 좋다. 침투하면서도 공을 받아낼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좋아질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도영이 플레이를 잘 보면, 수비 압박이 심하지 않을 땐 공을 받아서 과감하게 플레이해요. 하지만, 공간을 찾아 뛰어 들어가면서 공을 받아내는 데는 어려움을 겪습니다.
프로의 세계잖아요. 상대가 분석하는 겁니다. 아직 어리다 보니 읽히는 거죠. 몸싸움도 쉽지 않을 거고요. 도영이는 유럽 진출을 꿈꾸는 선수입니다. 유럽으로 가려면 수가 많아야 해요. 단조로우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당장 K리그에서도 빠르고 힘 좋은 수비수들을 이겨내는 데 어려움을 겪어요. 그런 부분을 보완해 나가야죠.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선수잖아요. 잘할 겁니다.
Q. 인터뷰 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중계를 보고 있었잖아요. 해외축구도 많이 챙겨보고 연구하는 것으로 아는데요. 요즘 황선홍 감독에게 영감을 주는 지도자는 누구입니까.
이정효 감독이 좋아하는 로베르토 데 제르비, 미켈 아르테타 두 감독이 눈에 들어오는 듯해요. 개인적으론 호셉 과르디올라 감독 축구는 별로입니다.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웃음). 데 제르비, 아르테타 두 감독의 축구를 유심히 보면, 미드필더 숫자를 많이 가져가고, 상황에 따른 여러 전술을 녹여내는 게 참 인상적인 것 같아요.
Q. 황선홍 감독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지도자는 누구입니까.
거스 히딩크 감독이죠. 제가 2002 한-일 월드컵 시작할 때만 해도 은퇴 후 진로를 결정하진 않았어요. 지도자는 선택지 중 하나였죠. 히딩크 감독이 일군 성과를 보면서 확신했습니다. 무조건 지도자를 해야겠구나.
Q. 이유가 있습니까.
히딩크 감독 한 사람이 한국 축구계를 정말 많이 바꿨어요. 히딩크 감독은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온 국민을 하나로 똘똘 뭉치게도 했습니다. ‘축구가 국민을 이렇게까지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라는 걸 히딩크 감독을 통해 알았죠. 한국은 2002 한-일 월드컵 전까지 본선에선 1승도 거두지 못한 팀이었잖아요. 그런데 4강에 올랐으니 지금 생각해도 대단하죠.
Q. 히딩크 감독은 무엇이 달랐습니까.
모든 게 달랐어요. 선수를 대하는 자세, 전술, 체력 훈련 등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방식이었습니다. 히딩크 감독을 만나기 전까지 체력 훈련이라고 하면 400m 트랙을 쉴 새 없이 뛰거나 산을 뛰어 올라가는 거였습니다. 접근 방식 자체가 다르니까 신기했죠. 성과는 별도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좋았고요.
히딩크 감독은 선수 개개인에게 명확한 동기부여도 심어줬습니다. 선수단 휴식 땐 확실하게 쉬게 해준 것도 인상 깊었어요. 한 번은 ‘가족을 다 부르라’는 거예요. 가족과 호텔에서 3일 동안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신경 써 주신 겁니다. 당시 훈련이나 경기 나가서 호텔 1인 1실 쓰는 것도 생소했고요. 피지컬 코치란 게 있다는 것도 히딩크 감독 때문에 알았죠. 히딩크 감독이 참 많은 걸 바꿨습니다.
Q. 히딩크 감독이라고 해서 성공만 한 건 아닙니다. 히딩크 감독의 지도자 인생엔 실패의 경험도 있거든요. 황선홍 감독 역시 성공과 실패를 두루 맛본 지도자입니다. 황선홍 감독의 꿈은 무엇입니까.
감독이 자기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건 우승뿐입니다. 우승해야죠. K리그1은 물론이고, 언젠가 ACL 우승컵도 들어 올리고 싶습니다.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 월드컵에도 도전하고 싶고요.
마지막으로 이 얘길 꼭 하고 싶어요. 우리가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나아갈 수 있는 건 언제 어디서나 응원을 아끼지 않는 팬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팬들이 2024시즌처럼 팀을 걱정하는 일이 없도록 매 순간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대전을 위해 모든 걸 쏟아낼게요. 단단한 팀을 만든 것이 대전 감독 황선홍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팬들에게 보답하는 유일한 길이고요.
[대전=이근승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