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최불암이 향년 87세로 별세한 가운데, 13년 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후원아동 50명이 찾은 잠실야구장에서 65번 유니폼을 입고 직접 시구에 나섰던 모습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30일 유족에 따르면 최불암은 지난 29일 밤 서울 강서구의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던 중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별세 소식과 함께 2013년 7월 9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NC 다이노스의 경기 당시 MK스포츠가 촬영한 사진도 다시 눈길을 끈다.
당시 최불암은 LG 트윈스의 줄무늬 유니폼에 등번호 65번을 달고 마운드에 올랐다. 왼손에는 노란색 글러브를 끼고, 오른손으로 손가락 두 개를 펼쳐 포수 현재윤에게 사인을 보냈다.
시구에 앞서 당시 LG 김기태 감독과 승리를 기원하는 악수를 나눈 최불암은 포수와 마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이어 오른손에 쥔 공을 높이 들어 올린 뒤 힘차게 시구에 나섰다. 모자를 벗고 마이크를 잡은 채 관중에게 인사하는 모습도 사진에 남아 있다.
이날 최불암이 마운드에 오른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LG 트윈스는 이날을 ‘러브 기빙 데이(Love Giving Day)’로 정하고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후원 행사를 진행했다. 재단 후원아동 50명이 경기를 관람했고, 전국후원회장을 맡고 있던 최불암이 승리기원 시구자로 나섰다.
최불암과 어린이재단의 인연은 국민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시작됐다.
1981년 ‘전원일기’에서 김 회장 역을 맡았던 최불암은 부모 없이 지내던 어린 금동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이야기를 그렸다. 극 중 김 회장은 시장에서 깡통을 놓고 노래를 부르던 금동이를 만났고, 밥을 먹기 위해 돈을 모은다는 아이를 안타깝게 여겨 집으로 데려왔다.
이후 금동이를 가족으로 입양한 장면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최불암은 이 일을 계기로 당시 어린이재단 관계자의 권유를 받아 실제 어린이 후원 활동에 나섰다.
그는 지난 2021년 MBC ‘다큐 플렉스-전원일기 2021’에서 금동이 입양 장면을 떠올리며 시청자들이 극 중 김 회장의 선행을 실제 자신의 일처럼 받아들였다고 회상했다.
최불암은 자신이 잘한 일이 아니라 김정수 작가가 써준 대본을 연기한 것이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드라마 속 이야기가 현실의 어린이들을 돕는 일로 이어진 셈이다.
1985년 어린이재단 전국후원회장에 취임한 최불암은 이후 수십 년 동안 후원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2015년 초록우산과의 인터뷰에서도 처음 후원을 시작했을 때를 떠올렸다. 책상에 후원아동의 신상명세서를 놓고 시작한 일이 점차 진심을 담은 활동으로 바뀌었고, 동료 연기자들까지 후원에 동참하게 됐다고 밝혔다.
어린이들을 위한 활동은 야구장으로도 이어졌다.
최불암은 2013년에 앞서 2012년 4월 14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와 KIA의 경기에서도 시구를 맡았다. 당시 LG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사회공헌 협약식에 참석한 그는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마련된 자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며 시구하게 돼 영광이라는 소감을 전했다.
이듬해인 2013년 7월 9일에도 어린이들을 위해 잠실 마운드에 올랐던 최불암. 그날 LG는 NC와 1-1로 맞선 연장 10회말 이진영의 끝내기 안타에 힘입어 2-1로 승리했다. 3연패를 끊고 시즌 40승 고지에 오른 날이었다.
고인이 평생 이어온 어린이재단과의 인연은 마지막 길에서도 계속된다.
최불암의 장례는 그가 오랫동안 전국후원회장으로 활동했던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1981년 ‘전원일기’에서 금동이를 가족으로 맞아들였던 일을 계기로 시작된 인연이 40여 년이 흐른 뒤 고인의 장례까지 이어진 것이다.
최불암은 2021년 ‘전원일기’ 동창회에서 어린이재단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하며 김정수 작가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나는 김정수 씨 덕분에 어린이재단 일을 지금까지 하는 것이 가장 큰 내 생의 보람이고 뜻이고 그렇다.”
[김승혜 MK스포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