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한국시각) 홈팀 카타르의 대회 2연패로 막 내린 제18회 아시안컵 축구에서 4강 진출에 실패한 일본은 격려 분위기가 역력한데 결승 진출이 좌절된 한국축구는 감독 퇴진은 물론 축구협회장도 물러나야 한다는 책임론이 강하게 몰아치고 있다.
더욱이 책임론은 축구계 내부만의 문제를 넘어 정계와 연예계까지 번져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경남지사 시절 도민구단을 운영했고 지금은 대구FC의 구단주인 홍준표(70) 대구시장과 국민의 힘 당 대표 직무대행을 역임한 4선의 권성동(64) 의원이 채찍을 들었다. 또 연예계의 박명수(54)와 박준금(62)도 대한축구협회 회장과 축구대표팀 감독의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우선 대회 최다 우승(4회)의 관록에도 불구, 지난 3일의 8강전에서 이란에 역전패한 일본 상황을 보자. 일본은 전반 28분 모리타 히데마사가 선취골을 넣었으나 후반 동점골에 이어 경기 종료 4분 전 이란의 골게터 자한바크시에게 페널티 킥을 허용, 1대2로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풀죽은 모습으로 귀국한 일본축구대표팀은 오히려 격려의 선물을 받았다. 일본축구협회(JFA)는 지난 8일 기술위원회를 열고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을 계속 신임하기로 했다. 소리마치 야스하루 JFA 기술위원장은 회의를 마친 후 “긍정적, 부정적 의견이 다 있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지금 대표팀을 이전보다 더 지지해서 (2026 북중미) 월드컵을 준비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일본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7위로 아시아축구연맹(AFC) 가맹국 가운데 가장 높고, 지난해 9월 카타르 월드컵에서 독일(2대1 승), 스페인(2대1 승) 등 유럽 강호를 꺾고 16강에 진출한 터라 우승 기대감이 컸으나 이란에 무너지고 말았다.
모리야스 감독은 이란과의 경기중 부상에서 회복한 에이스 미토마 가오루(브라이턴)를 후반 22분 투입했으나 팀이 패배하자 “교체 카드를 적절하게 활용하지 못했다”며 스스로 잘못을 시인하는 자책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소리마치 위원장은 “모리야스 감독은 그동안 수없이 많은 경기를 치렀다. 그런 사람이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며 “우린 전적으로 모리야스 감독을 지지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렇다면 이번 대회에서 준결승까지 진출한 한국축구는 어떠한가. 지난해 3월 정몽규(62) 대한축구협회 회장의 강력한 추천에 힘입어 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위르겐 클린스만(60) 감독. 그는 1990년 독일의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 등 선수로서는 명성을 떨쳤으나 지도자로서는 이렇다 할 공적이 없는 약점을 안고 있었다.
세계랭킹 23위인 한국은 E조 리그에서 졸전 끝에 요르단, 말레이시아와 비긴데 이어 지난 7일 세계랭킹 87위 요르단과의 준결승에서 0대2로 허무하게 무너지자, 감독의 선수기용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우디와의 16강전, 호주와의 8강전에서 연속 120분의 연장전까지 치렀던 손흥민 이강인 등 베스트멤버를 연속 기용, 선수들을 ‘파김치’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26명의 엔트리를 고루 기용하며 선수들의 체력을 안배해야 했는데 그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요르단과의 경기에서 5명까지 선수를 교체할 수 있는데 2명의 카드는 사용해 보지도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대표팀 사령탑으로서 ‘기본기’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은 이번 대회 6경기에서 10골을 내줘 참가국 가운데 최다실점의 불명예를 안았다.
그러나 클린스만 감독은 평소 사고방식이 한국 사회의 정서와 동떨어져 더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요르단과의 경기가 끝난 뒤 SNS에 사과문을 올린 주장 손흥민을 비롯해 김민재 이강인 등은 “결승에 진출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는데 클린스만 감독은 히죽히죽 웃으며 요르단 후세인 아모타 감독에게 축하의 악수를 건네 축구 팬들의 분노를 샀다.
그의 근무태도도 도마 위에 올랐다. 다양한 부업도 갖고 있는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해 3월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이후 국내에 머무는 기간보다는 자택이 있는 미국과 독일에 체류하는 기간이 훨씬 길었다.
한 매체는 “클린스만 감독이 지난해 국내에 머문 기간은 67일뿐이었다”고 할 정도. 아시안컵 탈락 후 지난 8일 귀국한 그는 공항에서 “다음 주 해외에 나가겠다”고 해놓고 이틀만인 10일 자택이 있는 미국으로 떠났다.
이 같은 클린스만 감독의 빗나간 행보는 감독 선임 때부터 김판곤 전 부회장이 구축한 감독선임 규정을 무시하고 밀어붙인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의 책임이 더 크다는 지적이 있다. 여기에 정몽규 회장이 클린스만 감독을 옹호하는 등 독단의 행보가 구설에 오르고 있다.
이와 관련, 홍준표 대구시장과 권성동 4선 의원 등 정계인사와 여배우 박준금 등 연예계 인사들도 클린스만 감독의 해임 또는 사퇴를 주장하고 있다.
홍준표 시장은 지난 11일 페이스북에 “(클린스만 감독이) 미국 간 김에 제발 돌아오지 말라, 감독 자질도 안된 사람이 한국축구만 골병들게 하지 말고”라며 “정몽규 회장이 책임지고 이참에 화상전화로 해임 통보하라”고 정 회장을 압박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도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애초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할 때부터 큰 우려가 있었다”며 “이 같은 우려가 이번 아시안컵 대회에서 현실로 나타났다”고 클린스만 감독을 비판했다.
개그맨 박명수도 지난 9일 KBS 쿨FM ‘박명수의 라디오쇼’에서 “선수와 감독과의 신뢰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선수들 이야기도 들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 등은 세계 1등 하는 선수들인데, 이게 과연 제대로 가는 건지 본인들은 알 거 아닌가. 선수 입장에 맞춰 감독을 뽑을 필요도 있다”고 주장했다.
박준금 역시 본인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쏘니(손흥민)의 행복 축구를 응원했다. 하지만 오천만 국민의 마음을 단 한 명의 외국 감독이 상처를 주었다. 문화를 짓밟은 것 같다. 마음이 아프다”고 게시글을 올렸다. 그는 “클린스만 감독이 자진해서 사퇴하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한편 대한축구협회는 이번 주 안으로 전력강화위원회를 열고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 여부를 논의한다. 대한축구협회와 클린스만 감독의 계약기간은 2026년 북중미 월드컵까지 2년 6개월 정도 남아있고 당장 3월부터 북중미 월드컵 2차 예선도 치러야 한다.
클린스만 감독을 경질하면 잔여기간 연봉을 지급해야 하는데 연봉을 29억 원으로 계산하면 약 70억 원을 지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의에서는 일본처럼 한국도 국내파 감독의 대표팀 기용 가능성을 논의할지 그 결과가 주목된다.
이종세(대한언론인회 총괄부회장·전 동아일보 체육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