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로서, 감독으로서 NBA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돈 넬슨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86세.
‘ESPN’ 등 현지 언론은 현지시간으로 9일 유족들의 성명을 인용, 그의 부고를 전했다.
유가족들은 성명을 통해 “일요일 아침 우리의 사랑스러운 남편이자 아빠,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였던 돈 넬슨이 사랑하는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주님의 곁으로 떠났다. 고인은 지난 한주간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에 둘러싸여 그의 우정을 함께 축복하고 수많은 기억들을 되새겼다”는 말을 전했다.
넬슨은 1962년 드래프트에서 3라운드 전체 19순위로 시카고 제프리스에 지명되며 프로 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시카고와 LA레이커스를 거쳐 1965년 보스턴 셀틱스로 이적했고, 이곳에서 11시즌을 뛰며 다섯 번의 우승(1966, 1968-69, 1974, 1976)에 기여했다.
NBA에서 14시즌 동안 1053경기에 출전, 경기당 평균 10.3득점 4.9리바운드의 성적을 남겼다. 그의 등번호 19번은 1978년 셀틱스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됐다.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 변신했다. 밀워키 벅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뉴욕 닉스, 댈러스 매버릭스에서 통산 1335승 1063패를 기록했다.
2010년 NBA 통산 최다승 감독으로 현장에서 물러났다. 이 기록은 2022년 그렉 포포지치에 의해 깨졌다.
플레이오프에는 총 18차례 진출, 75승 91패 기록했다.
밀워키에서는 단장직까지 겸임했던 그는 자신의 애칭을 딴 ‘넬리 볼(Nellie Ball)’이라는 이름의 독창적인 코칭 스타일을 만들었다. 넬리 볼은 체격은 작지만 운동 능력이 뛰어난 선수들을 활용, 속도를 이용한 미스매치를 유발하고 빠른 템포의 공격을 주도하는 전술로 시대를 앞서갔다는 평가를 받았다.
1983년과 85년, 92년 세 차례 올해의 감독에 선정됐지만, 감독으로서 우승은 차지하지 못했다.
2012년 네이스미스 미국 농구 명예의 전당에 감독 자격으로 입성했다.
농구인들은 일제히 그를 추모했다. 댈러스에서 그와 함께했던 덕 노비츠키는 자신의 X에 “당신은 단순히 나를 드래프트한 것이 아니었다. 당신은 나를 믿어줬다.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내 가능성을 봐주셨다. 당신이 내 첫 코치로서 내 플레이를 마음껏 할 수 있게 해줬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수백 번 이렇게 말해왔고, 앞으로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라는 글을 남겼다.
스티브 커 골든스테이트 감독은 성명을 통해 고인을 “농구에 여전히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진정한 혁신가”라 표현하면서 “그는 끊임없이 기존의 관념에 도전하고, 다양한 라인업과 경기 스타일을 실험했으며, 다른 사람들은 미처 보지 못했던 경기 내의 가능성을 포착해냈다. 오늘날 NBA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많은 것들이 넬리가 접근했던 방식에서 비롯됐다”는 평을 내놨다.
골든스테이트 간판스타 스테판 커리는 “내가 워리어스에 지명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돈 넬슨 덕분이었다. 그가 신인 선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는 첫날부터 내게 도전 의식을 심어줬고 코트 위에서 내 기량을 최대한 발휘할 기회를 줬다. 우리는 한 시즌을 함께하며 많은 것을 배웠고, 그가 미네소타에서 NBA 역사상 최다승 감독이 된 날 밤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며 고인과 추억을 떠올렸다. “그는 이 스포츠에 헤아릴 수 없는 영향을 미쳤으며, 농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전략가 중 한 명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는 진정한 아이콘이며, 전설적인 경력을 쌓는 동안 그에게 영향을 받은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그리워할 것”이라며 고인을 추모했다.
아담 실버 NBA 커미셔너는 “돈 넬슨은 두려움 없는 태도와 독창성, 그리고 확고한 신념을 통해 NBA 농구에 혁명을 일으켰다. 50년 가까이 NBA에 몸담으며 셀틱스 선수로 5회 우승을 차지했고 리그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고 선구적인 감독 경력을 쌓았다. 그는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독보적인 개성을 불어넣었으며, 그가 우리 스포츠에 남긴 영향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어질 것”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샌프란시스코(미국)= 김재호 MK스포츠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