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아버지에게 “네 살길은 네가 찾아라”라는 말을 들었던 이웅평은 전투기를 몰고 남으로 내려왔지만, 귀순 후 받은 15억6000만원의 보상금만큼은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북에 남겨둔 가족을 위해 간직했다.
3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1983년 미그 전투기를 직접 몰고 귀순해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었던 이웅평의 삶과 아내 박선영 씨가 기억하는 그 이후의 이야기가 공개됐다.
북한에서 전투기 조종사로 복무했던 이웅평은 엘리트 군인으로 꼽혔다. 하지만 가족 중 한 명이 남한으로 향한 사실이 문제가 되면서 아버지가 숙청당했고, 아버지는 마지막 만남에서 “우리 가족은 끝이다. 네 살길을 찾아라. 여기에 있으면 네 인생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보다 앞서 북한 체제에 의문을 품게 만든 작은 계기도 있었다. 휴가 중 바닷가에 떠내려온 남한 라면 봉지를 발견한 것. 봉지에는 ‘변질이나 훼손된 제품은 교환해 준다’는 취지의 문구가 적혀 있었고, 이웅평은 이를 보며 북한의 체제와 현실에 회의를 느꼈다고 전해졌다.
결국 1983년 2월 이웅평은 자신이 몰던 미그 전투기의 기수를 남쪽으로 돌렸다. 그의 전투기가 남하하면서 전국에 실제 경계경보 사이렌이 울렸고, 남한에 도착한 뒤에는 위장간첩이 아니냐는 의심도 받았다. 이웅평은 북한의 전술 작전 계획과 격납고 위치 등 군사기밀을 공개했다.
정부가 지급한 귀순 보상금은 15억6000만원이었다. 방송에서는 당시 고급 아파트 약 78채 가격에 해당하는 규모였다고 설명했다.
이웅평은 이후 대한민국 공군 장교로 군 생활을 이어가는 한편 ‘반공 아이돌’로 불릴 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를 보기 위해 여의도광장에 150만명이 몰렸고, 한 해 공식 행사만 900회가 넘었다고 전해졌다. 출연진은 “지금으로 따지면 BTS급”이라며 당시의 인기를 설명했다.
그러나 남한에서 시작한 신혼생활도 평범하지 않았다.
북한의 암살 위협 속에 아내 박선영 씨와 공군 관사에서 생활하던 이웅평은 집 안에서 도청까지 당했다고 했다. 박 씨는 “어느 날 길게 연결된 도청장치를 발견했다”며 국가 기관의 감시와 도청이 이어졌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결국 박 씨는 보안사령관을 찾아가 “하루를 살더라도 나가서 살게 해달라. 아니면 이혼을 하겠다”고 요구했다. 이후 부부는 민간 아파트로 옮겨 신혼생활을 다시 시작했고 두 자녀를 얻었다.
이후 이웅평은 B형 간염에 의한 간경화로 건강이 악화됐다. 아내가 간이식을 하겠다고 나섰지만 이웅평이 강하게 반대하기도 했고, 이후 수술을 받아 건강을 회복했다.
그러나 박 씨는 남편이 북에 남겨진 가족들의 사망 소식을 접한 뒤 큰 충격을 받았다고 기억했다. 건강을 회복한 뒤에는 약을 먹으라는 아내를 의심하며 복용을 거부하기도 했고, 이웅평은 2002년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아내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그동안 나 때문에 고생 많았다. 안 해도 될 고생했다”였다.
그리고 귀순 당시 받았던 15억6000만원은 끝내 다른 의미로 남았다.
이웅평은 거액의 보상금을 평생 한 푼도 쓰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훗날 통일이 되면 북에 남겨둔 가족들을 위해 쓰겠다며 그대로 남겨뒀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승혜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