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기 별세…아역부터 국민 배우까지, 한국 영화의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

배우 안성기가 5일 별세했다. 향년 74세. 아역 배우로 스크린에 첫발을 내디딘 지 68년, 한국 영화의 성장과 침체, 그리고 부활의 시간을 모두 함께 걸어온 이름이었다. 한 배우의 생애는 곧 한국 영화사의 한 장면이었다.

안성기는 이날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던 중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생을 마감했다. 지난달 30일 자택에서 음식물이 목에 걸려 쓰러진 뒤 의식불명 상태로 중환자실에 입원한 지 6일 만이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에 마련된다.

1957년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한 안성기는 당시 다섯 살이었다. 이후 아역 배우로 활동하며 한국 영화의 황금기를 함께했고, 성장통과 침체기까지 고스란히 지나왔다. 아역에서 성인 배우, 그리고 노년에 이르기까지 한 생애를 스크린 위에서 완주한 배우는 한국 영화사에서도 드물다.

안성기는 이날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던 중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생을 마감했다. 지난달 30일 자택에서 음식물이 목에 걸려 쓰러진 뒤 의식불명 상태로 중환자실에 입원한 지 6일 만이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에 마련된다. 사진 = 천정환, 김영구 기자

1960년 김기영 감독의 10대의 반항에서는 소매치기 소년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문교부 우수국산영화상 소년연기상과 샌프란시스코 국제영화제 소년특별연기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이듬해 하녀 속 소년의 얼굴 역시 지금까지 회자된다.

중·고교 시절 촬영 현장에서 살다시피 하며 학업과 연기를 병행했고, 한때 실어증 증세를 겪을 만큼 혹독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후 한국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에 진학해 학군장교로 복무했으며, 전역 후 한동안 연기를 떠나 있던 그는 1980년 영화 바람 불어 좋은 날로 성인 배우로 복귀했다.

아역 스타 출신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통념을 깨고, 안성기는 1980~90년대를 대표하는 배우로 자리 잡았다. 고래사냥, 안개마을, 깊고 푸른 밤, 기쁜 우리 젊은 날 등에서 그는 청춘의 방황과 시대의 얼굴을 정확히 담아냈다. 이후 투캅스, 태백산맥,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실미도, 라디오 스타에 이르기까지 장르와 시대를 가리지 않고 중심에 섰다.

그는 성인이 된 이후 TV 드라마 출연을 극도로 자제하며 “영화 배우로 남겠다”는 선택을 지켜왔다. 한국 영화가 침체기에 접어들었던 시기에도 작품의 흥행 여부와 관계없이 출연을 이어간 이유는, 영화판을 떠나지 않겠다는 책임감 때문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연기력은 세월을 비껴갔다. 안성기는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네 개의 시대를 관통하며 주연상을 수상한 유일한 배우다. 백상예술대상, 대종상영화제,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고, 백상과 대종상에서는 역대 최다 수상 기록을 남겼다.

최근까지도 그는 현역이었다. 2022년 영화 한산: 용의 출현에 출연했고, 2024년에는 대한민국예술원 영화분과 회원으로 선출되며 평생의 업적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안성기는 늘 앞에 서 있었지만, 결코 앞서 나서지 않았다. 과장 없는 연기와 절제된 태도, 후배를 향한 배려는 그를 ‘국민 배우’로 만들었다. 스크린 속 얼굴보다 현장에서의 품격이 더 오래 기억되는 배우였다.

1957년 시작된 한 배우의 시간은 그렇게 한국 영화의 역사와 겹쳐 있었다.그리고 오늘, 그 한 시대가 조용히 막을 내렸다.

[김승혜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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